#42. 중년싱글생존일지
자발적 망각인지, 퇴행성 망각인지 모르겠으나 오십대로 접어들면서 자꾸 내 나이를 까먹게 된다. 오십 둘인지, 셋인지, 넷인지 자꾸 헷갈린다. 솔직히 앞으로도 계속 까먹을 것 같다.
숫자 나이는 까먹어도 몸나이는 뼈저리게 느낀다. 아무리 영양제를 챙겨 먹어도 몸뚱이가 반응을 안 한다.
자도 자도 피로가 안 풀려 자꾸만 박카스를 찾게 된다.
그 좋아하는 자전거도 힘에 부쳐 이젠 안 탄다.
나이만 먹고 내세울 게 없어서 그런가, 이제는 어디 가서 나이 말하는 게 창피하다.
지난 주말 보육교사 대면수업에서 조원끼리 자기소개를 하라고 해서 당황했다. 아무리 봐도 교육생 중에 내가 최고령(?)인 것 같아서다. 다른 조원 두 명은 자기소개하는데 제일 먼저 나이부터 밝히더라.
“전 마흔네 살이고 10살, 8살 남자아이 둘 키우고 있어요.”
“전 서른두 살이고 결혼한 지 3년 됐지만 아이는 없습니다. “
난 사실대로 말하기 싫었다. 내 나이를 밝히고 결혼 안 했다고 하면 대부분 '어머!' 소리부터 한다. 그 말에는 "아니, 왜 여태?"라는 말이 담겨 있다. 굳이 오늘 하루 보고 말 사람들한테까지 그 “어머!”소리를 듣기 싫었다. 그래서 나이는 네 살 깎아서 오십이라 말하고 직장 다닌다고 했다. (이상하게 오십은 괜찮은데 오십 하나부터는 엄청 늙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 나이를 듣고 조원들이 깜짝 놀라더라.
"어머, 그렇게 안 보여요!"
'어머, 니들 정말이니? 내 눈엔 내 나이가 제대로 보이는데?‘
이제는 어려 보인다는 말이 예전처럼 좋지만은 않다.
한 달 전 도서관 갔다 오는데 칠십 할아버지(?)가 뒤에서 "학생!"하고 부르더라. 야구모자에 배낭을 메고 있어서 깜빡 속은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나이에 웬 학생? 내가 다 민망했다.
따지고 보면 이젠 칠십 대랑 오빠 동생 해도 될 나이 차인데 아직도 칠십은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지 늙은 건 생각 안 하고 남 늙은 것만 눈에 보인다.
얼마 전 지인의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길래 상심이 크겠다고, 연세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니 여든아홉이라더라. 그 말을 듣고 "아, 오래 사셨네."라고 했다. 그런데 말해놓고 보니 우리 엄마가 올해 여든 넷이더라.
다섯 살밖에 차이가 안 난다. '아차!'싶었다. 엄마가 5년 후에 죽어도 “아, 오래 사셨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저 세상 가는데 순서는 없다. 또한 누구나 죽는다. 그게 언제인가가 문젠거지.
그러니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게 답인 것 같다. 내일은 없다,라는 마음 가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