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건강 ep 15. 가공식의 역설적인 외모 조형
저는 얼굴이 네모난 편입니다. 어려서부터 지금의 얼굴형이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지금만큼 네모난 편은 아니었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이를 ‘앙’ 하고 다물면 턱 근육이 불끈 솟아오릅니다. 음식 먹을 때 턱 근육을 과다하게 사용했다거나 긴장하면 나도 모르게 아래턱이 강하게 다물어졌을 것이니, 그래서 지금의 더! 네모난 얼굴이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형제들과 비슷한 얼굴 형태를 가졌으니, 이것도 유전인가 싶지만, 그래도 더 네모난 얼굴형이기에 이는 분명 나의 극히 개인적이고 후천적 행위 때문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약간의 부정교합도 있고요.
음식이 조형하는 얼굴 모양
실제로 음식은 얼굴을 만들어줍니다. 정확하게는 음식의 종류와 조리 여부에 따라 아래턱뼈로 불리는 하악골의 발달이 달라집니다 [1]. 예를 들어 농경 생활로 채식을 주로 먹는 사람들은 비교적 짧고 넓게 벌어진 아래턱뼈를 가졌지만, 수렵·채집 생활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비교적 길고 좁은 아래턱뼈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유전적 요인과는 무관하게요.
동물을 상대로 연구한 결과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부드럽고 가공된 음식을 먹고 자란 바위너구리는 신선하고 가공되지 않은 음식을 먹고 자란 그룹보다 아래턱, 얼굴 아랫부분, 광대뼈 부위가 적게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
부드럽고 쉽게 삼킬 수 있는 음식이 만드는 브이라인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음식을 덜 씹거나 강하지 않게 씹으면 아래턱이 덜 발달한다고 말합니다. 과학자가 아니라도 이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합리적 추론이라 생각되고요. 턱을 많이 사용하면 그만큼 더 발달하리라 생각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니까요.
과학자들은 턱관절 사용 외에 또 다른 현상도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산업화 이후 턱관절의 저작 시간과 강도의 감소가 도시 인구에서 치아 혼잡(dental crowding)과 부정교합(malocclusions)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3]. 왜냐고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간이 먹어 오던 음식의 유형이 변했고 이제 더 이상 강하게 오래 씹을 음식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공장에서 만들어진 가공음식들은 거의 입안에서 씹기도 전에 녹기부터 하니까요.
결국 우리 주위에 갈수록 부드러운 음식이 많아지고, 그 음식들은 공장과 조리 과정에서 만들어지며, 그 음식을 덜 씹고 덜 강하게 씹음으로써 우리의 턱과 얼굴은 점차 가늘어지고 길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공식품의 역설적인 외모 조형
최근 아이돌과 걸그룹 멤버들은 제가 보기에 모두 브이라인을 가진 듯합니다. 분명 저의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외모와 얼굴형을 가졌고요. 21세기를 1/4이나 보냈으니 젊은 친구들의 얼굴도 변하는구나 싶지만, 그 이면에 분명 먹는 것이 어떤 역할을 했겠다고 상상하니 조금은 어색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찌 먹는 것만으로 한 개인의 얼굴이 그렇게 만들어지겠습니까? 그렇지만 세대에 따라 얼굴형이 다르다는 것은 분명 무엇인가 그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현대의 가공 음식과 조리 방식이 그 이유의 하나로 지목되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딱딱하고 질긴 음식을 먹어본 적이 거의 없기도 합니다.
[참고자료]
1.
von Cramon-Taubadel, N. Global human mandibular variation reflects differences in agricultural and hunter-gatherer subsistence strategies. Proc Natl Acad Sci. 2011 Dec 6;108(49):19546-51.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3241821/
2.
Lieberman, et al. Effects of food processing on masticatory strain and craniofacial growth in a retrognathic face. J Hum Evol. 2004 Jun;46(6):655-77.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04724840400051X?via%3Dihub
3.
Corruccini, RS. An epidemiologic transition in dental occlusion in world populations. Am J Orthod. 1984;86:419–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