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지하철을 타기 위해 뛰어가고 있었다. 머리는 제대로 말리지 못한 채였고 걸음도 빨랐는데, 당장이라도 호랑이가 쫒아오고 있다 해도 믿을 만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에 저 멀리서 신사임당이 보였다. 50000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앞사람이 흘리고 갔는지 보니, 아무도 없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사람이 한 명 있었지만 뒤를 돌아보고 있었고, 내 뒤를 따라오는 사람도 없었다.
일단 주웠다. 누가 훔쳐갈 수 있으니. 나는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곧장 지하철 안전 요원에게 50000원을 내밀며
"저기서 이걸 주었는데요"
하고 말했다. 근데 이상했다. 마음이 괜히 불편했다. 안전 요원 아저씨가 가져갈까 봐 두려웠다. 워낙 그런 일이 많다고 해서, 나는 그게 마음에 많이 걸렸다.
안전 요원 아저씨는,
"어이구 고맙습니다."
라고 하는데 나는 그 안전 요원의 그 고맙다는 말이 왜 이리 아니 곱게 들리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어 후회가 됐다. 경찰서에 맡겼어야 됐는지도 몰랐으니까. 근데 그 자리에서 경찰서는 너무 멀었다.
일단은 최대한 CCTV가 있는 쪽으로 걸었다. 나는 그 안전 요원에게 50000원이 건네 졌다는 증거를 마련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아, 50000원은 1층에서 주웠고, 안전 요원도 1층에 있었다. 나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가기 전까지 그 안전 요원을 유심히 관찰했다. 안전 요원이 주머니에 50000원을 넣는지 아닌지 확인하고, 그분이 역사로 들어가시는 것까지 보고서야 지하로 내려갔다.
누군가는 말할 법하다. 그냥 본인이 가져가지. 돈을 잃은 사람이 어디에서 잃었는지 어떻게 알겠냐고. 못 찾는다면, 그 안전 요원이 가져가든 본인이 가져가든 똑같지 않냐고. 일단, 나는 생각해봤다. 이 50000원을 잃은 이가 찾으러 온다면? 그때는 내 선택이 나았다. 만약에 50000원을 다른 사람이 주워서 본인이 가져갔다면, 아예 찾을 기회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주워서 안전 요원에게 드리는 것이 그나마 그 돈이 '100프로 도난' 당한 게 아니었다. 찾으러 오는 이가 있다면 그래도, 찾을 수 있으니까.
물론 그 안전 요원이 가져갈 수도 있다만. 이는 부차적인 문제다. 누군가의 50000원. 어쩌면 학생일지도 모른다. 아침에 학교 가다가 어머니가 맛난 거 사 먹으라고 건네준 돈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피땀을 흘려가며 일해 번 돈으로 딸아이 맛난 것 사 먹으라고 건네준 돈인지도 모른다. 온종일 그 때문에 마음 아프지 않을까. 그런 돈을 어찌 함부로 갖고 헤헤 웃고 있겠는가. 지하철 안에서 그 생각에 책이 읽히지 않았다.
50000원을 주워서 안전 요원에게 줬다고 하니, 주위 사람들이 내게 뭐라 한다. 누가 그것을 찾아가겠냐면서, 그냥 내가 가졌어야 된다고 말이다. 반은 기부하고 반은 맛있는 거 사 먹으면 좋다고. 물론. 장난이겠지. 누군가는 마음이 너무 아픈 상태인데. 누군가의 슬픔으로 행복해지는 게 좋겠는가.
아. 기억이 일전에 나의 어머니가 폰을 잃었을 때 누군가 주워서 근처 부동산에 맡겨놓고 갔다. 그때 알았다. 인생은 서로 도와가며 사는 것임을. 아무렴. 누구의 기쁨도 도난당해서는 아니 된다. 나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기쁨도 갈취해서는 아니 된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