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을 Oct 29. 2020

50000원을 주웠다

<50000원을 주웠다>


아침에 지하철을 타기 위해 뛰어가고 있었다. 머리는 제대로 말리지 못한 채였고 걸음도 빨랐는데, 당장이라도 호랑이가 쫒아오고 있다 해도 믿을 만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에 저 멀리서 신사임당이 보였다. 50000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앞사람이 흘리고 갔는지 보니, 아무도 없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사람이 한 명 있었지만 뒤를 돌아보고 있었고, 내 뒤를 따라오는 사람도 없었다. 


일단 주웠다. 누가 훔쳐갈 수 있으니. 나는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곧장 지하철 안전 요원에게 50000원을 내밀며 


"저기서 이걸 주었는데요"


하고 말했다. 근데 이상했다. 마음이 괜히 불편했다. 안전 요원 아저씨가 가져갈까 봐 두려웠다. 워낙 그런 일이 많다고 해서, 나는 그게 마음에 많이 걸렸다.


안전 요원 아저씨는,

"어이구 고맙습니다."


라고 하는데 나는 그 안전 요원의 그 고맙다는 말이 왜 이리 아니 곱게 들리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어 후회가 됐다. 경찰서에 맡겼어야 됐는지도 몰랐으니까. 근데 그 자리에서 경찰서는 너무 멀었다.    


일단은 최대한 CCTV가 있는 쪽으로 걸었다. 나는 그 안전 요원에게 50000원이 건네 졌다는 증거를 마련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아, 50000원은 1층에서 주웠고, 안전 요원도 1층에 있었다. 나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가기 전까지 그 안전 요원을 유심히 관찰했다. 안전 요원이 주머니에 50000원을 넣는지 아닌지 확인하고, 그분이 역사로 들어가시는 것까지 보고서야 지하로 내려갔다.


누군가는 말할 법하다. 그냥 본인이 가져가지. 돈을 잃은 사람이 어디에서 잃었는지 어떻게 알겠냐고. 못 찾는다면, 그 안전 요원이 가져가든 본인이 가져가든 똑같지 않냐고. 일단, 나는 생각해봤다. 이 50000원을 잃은 이가 찾으러 온다면? 그때는 내 선택이 나았다. 만약에 50000원을 다른 사람이 주워서 본인이 가져갔다면, 아예 찾을 기회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주워서 안전 요원에게 드리는 것이 그나마 그 돈이 '100프로 도난' 당한 게 아니었다. 찾으러 오는 이가 있다면 그래도, 찾을 수 있으니까.


물론 그 안전 요원이 가져갈 수도 있다만. 이는 부차적인 문제다. 누군가의 50000원. 어쩌면 학생일지도 모른다. 아침에 학교 가다가 어머니가 맛난 거 사 먹으라고 건네준 돈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피땀을 흘려가며 일해 번 돈으로 딸아이 맛난 것 사 먹으라고 건네준 돈인지도 모른다. 온종일 그 때문에 마음 아프지 않을까. 그런 돈을 어찌 함부로 갖고 헤헤 웃고 있겠는가. 지하철 안에서 그 생각에 책이 읽히지 않았다. 


50000원을 주워서 안전 요원에게 줬다고 하니, 주위 사람들이 내게 뭐라 한다. 누가 그것을 찾아가겠냐면서, 그냥 내가 가졌어야 된다고 말이다. 반은 기부하고 반은 맛있는 거 사 먹으면 좋다고. 물론. 장난이겠지. 누군가는 마음이 너무 아픈 상태인데. 누군가의 슬픔으로 행복해지는 게 좋겠는가.   


아. 기억이 일전에 나의 어머니가 폰을 잃었을 때 누군가 주워서 근처 부동산에 맡겨놓고 갔다. 그때 알았다. 인생은 서로 도와가며 사는 것임을. 아무렴. 누구의 기쁨도 도난당해서는 아니 된다. 나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기쁨도 갈취해서는 아니 된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작가의 이전글 라이킷 1이 시사하는 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