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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을 Jun 02. 2021

<엑시트>

-일상으로부터의 Exit-

아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영화관을 종횡무진하며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이야기'는 '영화'를 빌려 생각해 본 어머니와 가족이라는 점이 '포인트!'

    

저의 어머니는 결혼하고 나서 영화나 오페라, 뮤지컬을 보러다니길 고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삶은 팍팍하셨어요. 영화 한 편도 마음껏 보시기 어려웠죠. 아들은 어머니의 잊힌 꿈을 스물 일곱 즈음 처음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꿈을 이뤄드리고 싶어 어머니를 모시고 영화관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엑시트> -일상으로부터의 Exit-

저희 가족은 여행을 잘 다니지 않습니다. 다른 가족은 어디를 갔대, 어디를 갔대 해도 우리 가족은 이렇다 할 거리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었어요. 아무래도 아버지가 여행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안 그런 듯 합니다. 바깥에 나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영화도 같이 본 적이 없습니다. 가족 영화도 저희에겐 먼 이야기일 뿐이었죠. 무엇보다 누구라도 먼저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거나 계획을 짜 진행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사실 저부터도 그런 '용기'가 없었네요. 뭐, 저는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돈을 제 마음대로 쓸 수 없으니 그랬지만요. 어찌됐든 환경적이든 성향적이든 그렇게, 같이 여행을 가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머니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가요. 영화죠. 한참 영화에 빠져서 같이 영화를 보러 다니고 있죠. 이런저런 영화를 많이 봤습니다. 어머니는 매번 기쁘다고 하시며, 영화의 묘미를 느끼시기 시작하셨죠.  그러다 <엑시트>라는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국내에서 1000만 관객에 돌파했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그 영화요. '따따, 따따따' 구조 요청법을 알려준 그 영화요. 여하튼 가족끼리 보기에 딱 좋다는 영화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얼른 예매를 했죠. 마침, 문화의 날이기도 해서 밥 먹고 보기에 딱 좋은 7시에 말이죠.

제 아버지는 <엑시트>를 보시며 조금 낯설어 하시었습니다. 뭔가 어색해 하시는 게 보였어요. 아직도 영화를 보시는 게 익숙치 않으신 것 같았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제가 오래도록 모시고 다니지 않았던 것 같아 죄송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아버지는 오히려 자가용을 몰아 주차장에 입장하는 것을 더 어려워하셨습니다. 차가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고요. 그건 그렇고, 과자를 들고 영화를 보았는데요.  아버지는 그것을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모릅니다. 남녀노소 모두 똑같나봐요.

영화 <엑시트>는 가스 테러가 발생해 혼잡한 도심 안에서 주인공들이 탈출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문제는 행사로 모인 가족들이 그 도심 안에 있었다는 점이죠. 그러니 그 급박한 상황 속에서 가족 간의 우애가 돋보인다는 점도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라고 볼 수 있겠네요. 조정석, 임윤아 씨가 주연을 맡았고, 조연 분들도 화려해 영화의 재미와 감동을 뒷받침 했는데요. 영화가 끝나고 저희 가족은 영화를 보다가 손에서 땀이 났다는 말을 다들 했습니다. 주인공 남자가 떨어지면 어떻게 할지. 손에 땀을 쥐며 보았다고요. 가족이 같이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심동체. 감정을 공유한 것이죠. 영화는 그래서 좋았습니다. 같은 영화를 보며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감정에 빠질 수 있으니까요.      


<엑시트>를 보면 주인공 조정석은 취업이 안 돼 백수인 상태로 나옵니다. 이상하게 그 장면에서 제 마음이 뜨끔하더군요. 저도 취업이 안 됐으니까요. 물론 나름 길을 걷고 있지만, 그래도 가정에 한우 몇 점 마음편히 사다드릴 정도로 안정적이지는 않으니까요. 이상하게 이 장면이 제 초라한 현실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았어요. 가족끼리 같이 보는 데, 제 마음이 스크린에서 그대로 터져나올 것 같았습니다.   

   

<엑시트>를 보면 조정석은 본인의 목숨보다 가족의 안위를 먼저 챙깁니다. 멋있어요. 누구나 살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그 마음을 접어두고 '남'부터 챙기니까요. 물론 가족이 '남'은 아닙니다만. 어찌 됐든 절체절명의 순간 속에서는 가족도 마냥 가족이 될 수 없기도 하니까요. <엑시트>를 보며 이런저런 물음이 들더군요. 나는 과연 가족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일까. 나는 이렇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아들일까.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본래의 가치를 드러낸다고 하는데, 나는 과연 이렇게 극심한 재난이 발생하면 가족 앞에서 자랑스런 아들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생각이 두둥실 떠다니며 저녁 노을을 감췄습니다.    


생각해보면, 틀에 박힌 일상 속에서 저희 가족은 그 영화를 보던 그 순간 만큼은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매일 지겹도록 부딪히는 회사, 공부, 학교에서 그렇게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족끼리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게 정말 좋은 일이었어요. 


저희 가족도 그랬듯, 많은 사람들이 모를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일상으로부터 '엑시트' 하기 힘들다는 것을요. 영화를 자주 접하지 않았으니 낯설기도 했지만,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이 없었으니 어색하고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어요. 문제는, '엑시트'를 두어 번 할수록 그 어색함도 옅어진다는 사실까지 모른다는 점이죠. 서서히 불편함이 희석되면서 어느새, 편하게 영화를 보러 다닐 수 있는 수준까지 나아지는 데요. 만약 이렇게 영화를 보러가겠다 저하고 어머니가 다짐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일평생 가족끼리 함께 영화를 보면서 과자를 나눠먹고 주차장 진입로에 막혀서 힘들었던 '추억'을 만들진 못했을 겁니다. 


저와 어머니는 이날 생에 큰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엑시트>를 보기 전에 이 모자는 이미 영화 <사자>도 본 채였거든요. 모자가 연달아 영화를 본 건 그때껏 없었어요. 이는 역사상 매우 특별한 날이었죠. 대단한 이 모자에게 영화시민상을 줘야 마땅하다고 저는 감히 영화진흥위원회에 주장하는 바입니다. 어색했던 모자가. 1년에 영화 한 편 제대로 안 본 모자가. 어떻게 이렇게 영화를 두 편이나 연달아 보게 됐겠어요. 흠. 이게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이거, 뭐죠? 어머니는 이후로 휴일이면 꼭 영화를 '두' 탕씩 뛰자고 하십니다. 저는 그렇게 어머니의 위대함을 한 번 더 느낀답니다.

아, '엑시트'를 마치고 저희 가족은 주차장에서도 무사히 '엑시트'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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