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과 대화하는 시간
요즘 내가 자주 먹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푸드에세이를 연재하는 것이 다소 부끄러워진다. 얼큰한 라면과 시원한 탄산음료, 쌉쌀한 커피와 달콤한 빵. 내가 요즘 들어 자주 먹는 것들이다. 본래 나는 먹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나이다.’라고 생각할 만큼, 몸에 정갈하고 좋은 음식을 넣어주는 게 삶을 성실하게 대하는 태도라고 본다. 그러나 요즘은 그 생각을 외면하면서 살고 있다.
아이가 낮잠에 들면, 나는 짧은 낮잠 시간 동안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는다. 팬트리에서 라면을 꺼내 물을 올린다. 계란 하나를 넣으며 ‘단백질 보충되니까 괜찮아.’라고 위안을 삼는다. 빠르게 라면을 완성한 후, 휴대폰으로 유튜브 보면서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먹기도 한다. 다 먹고 나니, 속이 느끼해져 탄산음료를 한잔 마신다. 그리고는, 누적된 육아 피로를 물리치기 위해 커피를 내리기 시작한다. 커피에는 달달한 빵이 빠질 수 없으니 빵도 하나 곁들여준다. 이렇게 먹고 나면, 꿀맛 같은 휴식시간도 왠지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느낌이 든다.
나는 좀 다를 줄 알았다.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어도 내가 먹는 것, 내 건강은 열심히 챙기리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 혼자 먹는 식사는 제대로 차리기가 귀찮아졌다. 차라리 그 시간에 쉬면서 휴대폰을 보는 게 좋았다. 시간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썼으며, 계속되는 집안일을 해내기에 바빴다. 아이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는 일, 남편과 같이 먹는 식사에만 신경을 쏟기 시작했다. 나의 몸은 삶의 우선순위에서 점점 밀리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월경기를 맞았다. 나는 월경기가 되면 무척 피곤해진다. 잠이 쏟아질 듯 밀려오다가 아랫배가 아프고 소화가 잘 안 되기 시작한다. 몸이 전체적으로 무거워진다. 평소에는 이 정도의 증상만 있었는데, 이번에는 좀 달랐다. 왠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무기력이나 우울과는 달랐다. 혼자서 침잠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그렇게 외부의 여러 자극들에는 잠시 귀를 닫은 채, 내적 고요의 상태에 머무르기 시작했다.
육아와 살림을 최소한으로만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늘렸다. 혼자 있을 땐 의도적으로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만 하고, 자주 멍을 때렸다. 쉬어간다고, 해야 할 일을 줄인다고 생각하니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러다 보니 이번 월경기는 수고스러운 시간이면서도, 깊은 휴식이 되었다.
그리고 월경이 끝을 향해 가던 어느 날, 점심을 먹으려 주방으로 갔다. 팬트리를 열고 라면봉지를 꺼내려는데, 옆에 남은 파스타 면이 보였다. 왠지 라면이 먹고 싶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다 파스타면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어, 아이에게 해주려고 사놓은 싱싱한 양배추와 몇 알 남아있던 마늘을 꺼냈다. 재료는 양배추와 마늘, 단 두 가지로 결정했다. 빠르게 만들기 위해 최소한의 재료만 골랐다. 무엇보다 양배추는 내가 소화가 안 될 때면 자주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속이 더부룩한 지금의 몸에 딱 필요한 채소 같았다. 양배추만 한가득 입에 넣고 아삭아삭 씹어먹는 상상을 하며, 재빠르게 요리를 시작했다.
통으로 된 양배추를 가늘게 채 썰었다. 동그랗던 양배추는 가는 실처럼 으스러졌고, 칼질이 끝나자 커다란 실뭉치가 되었다. 마늘도 편마늘 모양으로 썰어주니 재료준비는 끝났다. 파스타면이 삶아지는 동안,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마늘과 양배추를 익혔다. 양배추의 숨이 죽자, 복슬복슬했던 실뭉치가 촉촉하게 가라앉았다. 익은 면과 함께 볶아주면서,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해주었다. 그리고 무언가 아쉬웠던 나는 들기름을 휘휘 둘러서 뿌려주었다.
총 조리시간은 10분이 걸렸다. 3분이면 완성되는 라면에 비하면 7분의 시간이 더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했다. 오랜만에 나에게 대접하는 요리. 내가 먹고 싶은 재료들만 가득 넣어 완성한 한 끼였다. 그리고 식사를 시작하자 더 마음이 편안해졌다. 양배추에서 올라오는 자연스러운 단맛, 면과 함께 입안에서 가득 씹히는 아삭 거림. 그리고 고소하게 혀끝에 맴도는 들기름의 향까지. 그동안 라면과 빵으로 더부룩했던 속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어느샌가 나는 휴대폰은 끄고 식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파스타를 먹으며 생각했다. 월경기동안 몸이 내게 무언가를 말해준 것 같다고. 몸은 침잠의 시간을 주었고, 깔끔한 음식에 손을 뻗게 해 주었다. 그러면서 내게 말했다. 삶에서 다른 중요한 것들도 많지만, 스스로의 몸을 너무 혹사시키지는 말아 달라고. 다른 것들을 챙기는 마음의 반이라도, 나의 건강을 챙겨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몸으로부터 듣는 그런 말이 싫지 않았다. 온전히 나를 위하는 메시지였으니까.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의 저자인 크리스티안 노스럽은 월경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배란기에 임신을 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월경기로 넘어가게 된다. 월경기에는 외향적인 활동보다 내향적인 분위기로 바뀌게 되는데, 이는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무언가를 탄생시키거나 발전시킬 준비를 하기 위해 더욱 내면으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월경도 내게 그런 의미였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잠시 나를 들여다보고 회복하는 기간. 내가 놓치고 있는 걸 다시 들여다본 휴식기였다. 이 침잠의 시기가 끝나고 나면 어떤 나로 되돌아올지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건 내 몸과 약속을 하나 했다. 이제부터는 라면 대신에 채소를 한가득 썰어 넣은 파스타를 먹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