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설 테니까
요즘은 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웃는 날이 많아졌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무지개처럼 밝은 미래도 그려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3년 전 일이 떠오르며 마음이 확 무너졌다.
결혼 준비와 이직 준비를 병행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때였는데,
코로나에 걸려 격리를 하면서
조울증이란 진상이 세 번째로 찾아왔다.
또 무너진 것이다.
그래도,
두 번을 이겨냈기에
예전보다는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문제는
3월 9일 대선 때 투표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코로나 환자들을 위한 투표소도 마련되어 있었지만,
아빠가 가지 못하게 막았다.
나는 결국 폭발했고,
“쟤 또 미쳤다”는 말과 함께
세 번째로 정신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다.
집 근처엔 마땅한 병동이 없어
저 멀리 인천까지 향했다.
그 길 위에서,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냥 차 문을 열고 뛰쳐 내릴까.
폐쇄병동에 세 번째로 입원한 내가 비정상인가,
세 번이나 입원시킨 아빠가 비정상인가.
과연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가.
내 마음속 세상은 잿빛인데,
3월의 푸르른 하늘 속 사람들은 너무나 평화로워 보였다.
나는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나만 왜 이럴까 하는 마음에
저 멀리,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이번 6월 3일 대통령 선거 때
갑자기 그 일이 떠올랐다.
그땐 투표를 하지 못했지만,
이젠 내 두 발로 투표소에 걸어가
소중한 한 표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투표소 앞에 도착해서
개명한 나의 새로운 이름을 말하고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는 순간,
손끝이 약간 떨리기 시작했다.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가슴 깊은 곳을 세게 울렸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던 일상 속에서
갑자기 울컥하는 일이 많아질 때면
‘지금 진짜 괜찮은 게 맞는 걸까?’
‘조울증은 재발이 잦다던데, 혹시 또…?’
불안이 내 마음속에서 조용히 자라난다.
조증 다음엔 깊은 우울이 오고,
그다음 조울증이 재발한다는 말을 들어서
기뻐도 너무 기뻐하지 않으려 한다.
조심스러움이 몸에 배었다.
마음이 너무 튀면, 언젠가 부러질까 봐.
하지만 이전의 나와는 다르다.
이런 불안이 오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지만
이제는 그런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됐다.
불안은 사라진 게 아니라,
그냥 나와 함께 걷는 중이다.
가끔은 불안이 옆자리에 앉아 말을 건다.
“불안하지 않아? 또 무너질까 봐 두렵지 않아?”
예전 같았으면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밤을 지새웠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답할 수 있게 됐다.
“그래, 무너질 수도 있지.
근데 무너지지 않는 사람은 없잖아?
이젠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아니까,
다시 일어날 방법도 알아.”
내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주기 전까지는,
불안은 계속 문 앞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흔들려도 괜찮다는 걸 배우는 중이다.
나아지는 중에도 가끔은 주저앉는다.
그래도 괜찮다. 예전보다 빨리 일어설 수 있으니까.
나는 오늘도 그렇게, 나를 조금 더 알아가며 걷는 중이다.
사진 출처 : Unsplash, Phpto by K So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