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을 살아내기 위해
10년간 약을 먹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이제는 좀 괜찮아진 거 같은데,
약 끊어도 되는 거 아닐까?
도대체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 걸까?’
이 작은 세 알이 정말 효과가 있는 걸까.
마음이 아픈 건데, 고작 이 알약으로 치료할 수 있을까?
약을 먹는다는 건,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매일 상기하는 일이기도 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덫에 걸린 듯한 기분이었다.
가끔은 ‘비정상’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었다.
괜찮은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면,
더 이상 약을 먹고 싶지 않았다.
먹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았다.
2014년, 우울증으로 처음 입원했던 정신병동에서 퇴원하고 반년쯤 지났을 때였다.
다시 예전처럼
밝은 여대생으로 돌아온 것 같다는 생각에,
스스로 약을 끊은 적이 있었다.
친구들이 누군가를 욕하며
“쟤 정신병자 아니냐”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내가 ‘정신병자’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싫었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내가 ‘정신병자’ 임을 들킬까 봐 걱정했고,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위축되곤 했다.
이제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처음 끊었을 때,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했지만,
며칠 지나도 별다른 증상이 없자,
완치됐다고 여겼다.
그렇게 약을 끊고 1년쯤 지난 뒤, 결국 재발했다.
우울증에서 조울증으로.
지금 돌아보면
그건 무모함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약을 끊고 싶은 마음은 가끔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루쯤은 안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날도 있었고,
‘왜 평생 이런 약을 먹어야 하지?’하는 생각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복용을 멈추고 싶다는 마음은,
아마도 내가 병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증거였는지도 모른다.
재발은 또다시 나를 구렁텅이로 끌어내렸고,
이전보다 더 긴, 어둠 속 터널 같은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야 했다.
그래도 터널에는 항상 끝이 있듯,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이젠 내 질병코드가 F318,
‘기타 양극성 정동장애’라는 것도 알았고,
세로토닌 등 뇌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으로 생기는 질병이며
약물치료가 가장 중요한 치료법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작은 알약 세 알이 나를 지켜준다면,
지금의 나를 잘 돌보는 방법이 약이라면,
이젠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약을 챙겨 먹는다는 건,
이제는 나를 돌본다는 의미가 되었다.
매일 잠들기 전 세 알을 꺼내면서
‘이 알약이 나를 지켜줄 거야’라고 되뇌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예전에는 약을 먹으며 움츠러들었지만,
지금은 그 시간이 오히려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 되었다.
완치보다 중요한 건
‘지속적으로 살아내는 힘’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조울증은 재발이 잦은 질병이고,
언제 또 진상이 찾아올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는 두렵지 않다.
약을 먹는 일이 더 이상 부끄럽지도 않다.
독서 모임을 진행하며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이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고혈압, 당뇨처럼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조울증도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병이다.
다른 사람은 몸이 아프고,
나는 그저 마음이 아플 뿐이라는 걸.
언젠가 약을 끊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지금’이 아니라
‘내가 준비되었을 때’여야 한다는 걸
이제는 잘 안다.
사진 출처 : Unsplash, Photo by Tuyen V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