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아픔이 내게 알려준 것들
여전히 가끔 울컥한다.
너무 기뻐서 벅차올라 울컥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위로에 울컥하기도 한다.
감정은 가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올라온다.
설명할 수 없는 벅참, 어딘가 깊은 곳이 건드려지는 느낌.
그런 날은 그냥 울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가끔은 조증인가 싶을 정도로 엄청 들뜨기도 한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치기도 하고,
하고 싶은 일들이 수없이 떠오른다.
공책에 하나씩 적어 내려가다 보면
머릿속에선 내가 책을 내고 강연하고,
어딘가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상상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그러다 잠시 뒤엔,
‘이거 다 조증 아니야? 조증이 우울증보다 더 위험하다던데…’
걱정이 밀려온다.
하지만 걱정의 꼬리를 얼른 끊어내고,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집중한다.
예전 같았으면 걱정에 휘둘렸을 텐데
지금은 감정의 파도를 관찰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올라오는 불안도, 들뜬 마음도, 그대로 인정하면서 흘려보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예전의 나는 시련을 겪을 때마다
나약한 쿠크다스처럼 톡 하고 부서져 부스러기만 남았다.
회사에서 전표 하나라도 잘못 입력하면 ‘또 틀렸네’ 자책했고,
누군가 던진 날카로운 말 한마디는 마음속을 파고들어 온종일 머릿속을 떠돌아다녔다.
그 시절의 나는 너무도 예민했고,
작은 바람에도 휘청거리는 나뭇가지처럼 쉽게 꺾였다.
하지만 그런 나를 탓할 수 없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버텼던 시간이었으니까.
‘왜 나한테만, 오빠도 동생도 아닌 왜 나한테만’ 하며
모든 걸 탓하기도 했었다.
“신은 네가 견딜 만큼의 시련만 주셔. 다 지나갈 거야.”
엄마가 말할 때마다,
‘아니, 못 견디겠어. 이제 그만하고 싶어.’라는 말을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그 말들은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겼고,
시간이 흐를수록 응어리처럼 차곡차곡 쌓여갔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결국 사람으로 치유된다고 했던가.
조울증이 재발하고, 퇴사한 뒤 만들게 된 독서 모임.
그곳에서 만난 따뜻한 사람들 덕분에
가슴속 응어리들은
조금씩 바람에 흩날리듯 풀리기 시작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 공감의 고개 끄덕임.
아무렇지 않게 내 옆에 앉아 있어 주는 시간들.
그 모든 것이 내게 마음을 놓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누군가의 온기가 말보다 먼저 다가올 때가 있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처음 만난 사람들한테도
‘저 조울증이에요.‘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낼 수 있기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내 이야기를 들은 그들은
‘사실 저도 우울증이에요. 약 먹고 있어요.’
하며 자신의 아픔을 내어주었다.
나의 아픔이 그들의 아픔을 감싸 안았고,
그들의 아픔도 나의 아픔을 헤아려주었다.
이제는 완전히 회복되길 바라지 않는다.
완전히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보다,
혼자가 아님을 아는 것이 더 큰 힘이 된다.
완벽한 회복이 아닌,
나를 알아가고 받아들이는 회복이 진짜 회복이라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이제는 다시 무너져도 괜찮다.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
그리고 분명, 누군가는 말해줄 것이다.
‘괜찮다고, 너 잘하고 있다고.’
그 한마디면 또 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
그렇게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내가 바라왔던 날들이 펼쳐질 거라 믿는다.
비가 갠 뒤 하늘을 수놓는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사진 출처 : joe ya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