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하지 않은 손님과 함께

하늘 담은 바다처럼 단단하게

by 다은

조울증은 앞으로 내가 걸어갈 길 위에

여전히 함께할 것이다.

약도 언제 끊을 수 있을지 모르기에,

계속 복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10년 전 재발했을 때는

이렇게 평범한 하루를 누리게 될 줄 몰랐다.


심지어 주치의 선생님은

“또 재발하면 사회생활은 어렵습니다”라고

엄마에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는 그게 무슨 말이냐며,

어떻게든 우리 딸의 병을 낫게 만들겠다고

다짐하셨다고 한다.


구렁텅이로 점점 빠져가는 딸을 꺼내기 위해

부단히 애썼던 엄마 덕분에

재발이 잦은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7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이제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손님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다.


그동안 겪어온 아픔을 담은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모든 상처를 드러낼 것이다.


나만의 공간, 책방을 꿈꾸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언제까지 무엇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물 흐르는 대로,

애쓰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가려 한다.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알 것 같다.

내가 왜 그동안 그렇게 마음고생했는지,

왜 두 번이나 권고사직을 당했는지,

왜 그렇게 생각이 많고 예민했는지.


이제는 오히려 나의 우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가 우울하지 않았다면,

세상이 꽃밭처럼 행복하기만 했다면

이렇게 글을 쓸 일도, 내 심연 깊숙이 들어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볼 일도 없었을 테니까.

어떨 때 행복하고,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묻고 알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테니까.


상처받을까 두려워,

누군가 내 병을 알까 무서워 두려움에 떨었던,

아무에게도, 심지어 친한 친구에게도

마음을 온전히 열지 못했던 지난 나에게 말해본다.


다 포기하고 싶었을 텐데,

버텨줘서 고맙다고. 정말 잘 버텼다고.


누구보다 마음이 여렸지만,

누구보다 강했던 나에게

이제는 다정한 말을 건네주고 싶다.




조울증과 함께 살아간다는 건,

더 섬세하게 나를 들여다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감정, 나의 생각 그 모든 것에 귀 기울이며

나를 돌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과 함께 이 삶을 살아내는 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지나가는 소나기인 줄 알았는데

마른하늘에 장대비 내리듯

감정이 요동치는 날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커다란 쓰나미가 덮치는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지금은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막을 수 있는

작은 3단 우산 정도이지만,

언젠가는 태풍을 막을 정도로 단단한 방파제가

될 것이라 믿는다.




아직도 때때로 흔들리고,

조용히 무너지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무너짐마저 부끄럽지 않다.

나는 그 시간도 나의 일부로 껴안기로 했다.

그렇게 오늘도, 조금씩 나를 배우며 살아간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하늘 담은 바다처럼 단단한 내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다시, 나를 믿는 연습을 해본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과 함께여도,

나는 충분히 살아낼 수 있으니까.


별일 아닐 거라 했지?
반짝여 세상을 비춰
어기지 않은 약속
태양이 건네줬던 힘

어떤 누구의 얘기도
기꺼이 미소 짓도록
단단한 내가 되기를
하늘 담은 바다처럼

- 윤하, 태양물고기



사진 출처 : Unsplash, Photo by Vizag expl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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