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는 연습

불안했던 나날을 지나며

by 다은

퇴사하고 맞이하는

고요한 하루가 주는 안정감이 있다.

창문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부터

재잘거리는 새소리와 맑은 하늘까지.

이 모든 것들 덕분에 퇴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또다시 백수가 되었지만 이제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

출근할 회사는 없지만

나만의 루틴대로 하루를 채워나가다 보면

어느새 하루는 저물어 간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이 배어버린 몸은

자유의 몸이 되었는데도 6시면 눈이 떠지고,

침대에서 뒹굴다가 일어나 아침 운동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점을 든든히 챙겨 먹고,

할 일을 하나씩 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오후가 되고,

저녁이면 남편이 퇴근해 돌아온다.


몸을 바삐 움직이면 불안할 틈이 없다.

가끔 불쑥 올라오는 생각들도,

이제는 조용히 스쳐 지나간다.


이제 서서히 괜찮아지고 있구나 느껴진다.

예전엔 울컥하는 순간이 많았는데,

요즘은 미소 짓는 시간이 늘고 있다.


혼자 있는 시간에도 덜 무너진다.

누가 없어도, 혼자여도 괜찮을 수 있다는 걸 조금씩 배우고 있다.




그동안 지난 10년간의 상처를 마음속 깊은 곳에 꽁꽁 숨겨두었다.

누가 알아챌까 무서웠다.

나는 죄를 지은 게 아닌데 왜 숨겨야 하나 싶었지만,

왠지 숨겨야 할 것만 같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나왔을 때는

끔찍한 기억이 다시 떠오를까 무서워서

유튜브에 검색조차 하지 않았고,

짧은 영상인 쇼츠로도 보지 않았다.


어떤 내용일지 무서웠고,

행여나 현실과 다를까 봐,

내가 입원했던 폐쇄병동은 저렇지 않은 데

미화되어서 나올까 봐 반발심이 있기도 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은 오지만,

진정한 아침은 병원을 벗어나야, 퇴원을 해야 오니까.

아니 이 아픔들이 다 씻겨 내려가야 오는 것이니까.




그렇게 누가 알아챌까 두려워 꽁꽁 숨기고 지내다,

생전 처음 본 사람한테

“사실 저, 조울증이에요. 오랫동안 약 먹고 있어요”

말을 꺼내고 글로 써 내려가는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상처는 감춘다고 아물지 않는다.

공기가 닿고, 바람이 스칠 때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는 걸 그땐 왜 몰랐을까.


그래도,

상처가 더 문드러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용기를 낸 게 어디냐며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본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의 속도에 맞추느라 헐떡이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나의 리듬,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산책하고, 글 쓰고, 책 읽는 하루가

더 이상 ‘도피’가 아니라 ‘선택’처럼 느껴진다.


예전에는 권고사직을 당하고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을 때면

‘내가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나’ 죄책감이 들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스스로 결정해서 회사를 그만뒀고,

집에서 혼자 조용히 책을 읽는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이다.

나를 채워 나갈 수 있는 시간이다.




무언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 대신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는 마음이 자리를 잡아간다.


가끔은 조급함이 스멀스멀 올라와도

“그럴 수 있지”하고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조울증이라는 초대하지 않은 손님과

함께 걷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내가 나를 믿어주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회복의 다른 이름이다.


더디더라도, 나는 내 속도로 걸어갈 것이다.

넘어져도 괜찮다. 이미 나는 잘 걷고 있으니까.



사진 출처 : Unsplash, Photo by Paulina her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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