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색으로 채워가는 하루

새로운 문을 기다리며

by 다은

지금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잠들기 전까지 고작 3시간이 나만의 시간이지만,

퇴사 후 7월부터는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나만의 시간으로 채울 수 있다.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무엇으로 채우게 될까.


퇴사를 한 달 앞둔 지금,

흰 도화지에 밑그림을 그리듯 상상해 보려 한다.

어떤 루틴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돌아보며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천천히 그려본다.




아침에 혼자 조용히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하는 시간.

잠깐 혼자 살던 시절에도 틈틈이 해오던 익숙한 습관이다.


양쪽 다리를 쭉 뻗고

발가락을 몸 쪽으로 당겼다가 내렸다가

천천히 반복하며 굳어 있는 몸을 서서히 깨운다.


기지개를 쭉 켜고 일어나

잔잔한 아침 스트레칭 영상을

한 동작씩 차근차근 따라 하다 보면

마음까지 정돈되는 기분이 든다.


크게 거창하진 않아도

이 작은 루틴 하나가 오늘 좀 더 잘 살아볼 수 있겠다는 용기를 준다.


몸을 부드럽게 일으켜 세우며

‘오늘도 잘 시작해 보자’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집 근처 안산천을 따라 산책하는 것도 좋아한다.

봄에는 산뜻한 분홍빛 벚꽃이 나를 반겨주고,

여름의 파란 하늘은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고,

초록빛 나무들은 그늘이 되어준다.


가을에는 서서히 지는 단풍을 보며

한 해도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새삼 깨닫고,

겨울에는 모든 걸 다 내어주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흰 눈송이에게 그 자리를 잠시 내어준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풍경을 눈에 담으며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가끔 놀러 오는 철새에게 인사를 나누며 걷다 보면

머릿속 복잡한 생각이 조금씩 정돈된다.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하고,

복잡하던 생각이 차분해진다.

그 길을 걸을 때면 내가 무너지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다는 작은 확신이 든다.



틈틈이 책을 읽는 시간도 나를 지켜주는 시간이다.

그때그때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다른 장르의 책을 읽으며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독여준다.


힘들 땐 심리 관련 책을 읽으며

나에 대해 좀 더 알아가고,

동기부여가 필요할 땐

뼈 때리는 말이 가득한 자기 계발서를 펼쳐 들고,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땐

소설을 읽으며 잠시 다른 삶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마음이 힘들 때마다 책을 읽으며

나와 삶을 조금씩 이해해 왔다.

책 속 문장이 나를 다독이는 순간을

몇 번이나 경험했다.

우울이 덮쳐 힘겨울 땐

벅차오르는 감정에 울컥하기도 하였다.

결국 나를 지탱해 준 건 문장이었다고 생각한다.



글쓰기와 일기 쓰기 역시 내게 꼭 필요한 루틴이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일기를 쓰면

그날 있었던 걱정이나 여러 부정적인 감정을 내려놓을 수 있다.

일기에 다 쏟아내고 잠에 들면

왠지 모르게 여느 때보다 곤히 잠에 들고 악몽도 덜 꾸는 것 같다.


종이에 써 내려간 감정들은

신기하게도 내 안에서 더는 날 흔들지 않았다.

그렇게 쌓인 작은 기록들이

어느새 스스로를 위로해 주는 힘이 된다.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준다.




크고 특별하지 않아도, 이런 작은 루틴들이

조울증이라는 손님과 함께 살아가는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어준다.


“작은 질서가 큰 혼란을 막아주는 힘”이라는 말처럼,

내 하루의 작은 틀이 무너지지 않도록 조금씩 다잡아보려 한다.


더 이상 퇴사 후의 삶이 두렵지 않다.

퇴사는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니까.


예전에는 남들과 무한 비교를 하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워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이를 조금씩 먹어갈수록,

남들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누군가는 33살에 새롭게 시작하는 게 용기 있다고,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누군가는 남편이 벌어오는 돈 쓰며

세상 편하게 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뭐, 맘대로 생각하라지.

내 인생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고, 나의 것이니까.


과연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넘치는 날엔

엄마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그만두고 나면 새로운 문이 열릴 거야.

원래 그만둬야 새로운 문이 열려.”


엄마의 말을 되새기며

나에게 새로운 문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어 본다.

그 문을 활짝 열고,

당당히 걸어 나가는 날만을 기다린다.



사진 출처 : Unsplash, Photo by Jon Ty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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