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려나가는 삶
퇴사하고 나면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다 할 거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사실은 막막함과 두려움이 더 크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 같기도 하고,
좋아하는 일을 과연 잘할 수 있을지,
취미가 일이 되었을 때도
즐기면서 할 수 있을지 아직 잘 모르겠다.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가,
하루 24시간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을 때의 자유가
오히려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
흰 도화지를 앞에 두고 무엇을 그릴지 고민만 하다가
수업시간이 다 끝났을 때처럼,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작조차 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그 두려움조차도,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가는 여정의 일부라고 생각해보려 한다.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조울증이라는 손님이 함께 머물러 있다.
가끔은 불안해지고,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날도 있다.
퇴사 이후에도 그 손님은 나와 함께할 것이며,
때로는 내 가능성을 가로막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시 떠올리며
손님과 함께 살아내는 법을 조금씩 배워갈 것이다.
요즘 들어 내 안에서 ‘작은 가능성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음을 느낀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모임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나를 찾아가는 모습들,
그것들이 내 가능성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지금은 아주 사소하게 느껴질지라도
작은 씨앗들이 모여 시간이 흐르면 새싹이 자라나고
결국에는 꽃을 피워낼 거라고 믿는다.
‘정말 그만둬도 괜찮을까?'라는 물음이 여전히 마음 한편에 있지만,
동시에 ’내가 원하는 삶은 분명히 있다‘는 마음이 조금씩 커진다.
퇴사를 결심한 지금, 나를 믿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려 한다.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어떤 일을 할지 결정했다면,
앞으로는 내 마음속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이려 한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상황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지,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 볼 것이다.
퇴사 이후의 삶이 아직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아도 괜찮다.
흰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며 밑그림을 그리고,
하나씩 나만의 색으로 채워나가려 한다.
아직은 어떤 색으로 채워질지 잘 모르겠다.
때로는 파란 하늘처럼 밝은 날들이 펼쳐질 수도 있고,
때로는 빨간 불구덩이처럼 불행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끝에는 초록빛 새싹이 자라날 거라고 믿어본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내가 진짜 원하는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길에 빨리 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진심으로 바라는 길,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길에 다다르는 것이 중요하다.
조울증이라는 손님과 함께 살아가며,
오늘도 내가 바라는 삶의 조각들을 찾는다.
퇴사를 한다고 해서 조울증을 내게서 완전히 떼어놓을 수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늘 마음을 흔들어 놓던 그 손님이,
새로운 시작 앞에서도 여전히 나를 붙잡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 손님을 억누르려 애쓰기보다는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고 싶다.
조금은 서툴러도, 그렇게 살아가보려 한다.
앞으로의 길이 불안하게 느껴지더라도,
“괜찮아, 아직 시작하지 않았을 뿐이야.”
스스로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며
내가 바라는 길 위에서, 조금씩 다독이며 살아가려 한다.
"뭐든 할 거야"라고 다짐했던 나를 믿으며,
작은 가능성을 하나씩 키워갈 것이다.
사진 출처 : Unsplash, Photo by Riley Rev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