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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품어온 꿈, 처음으로 말하던 날

by 다은

꿈이라는 단어는 왠지 모르게 거창하게 느껴진다. 초등학생 시절, 어른들이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라고 물을 때마다 기대에 보답하는 꿈을 말해야 할 것만 같았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꿈. 선생님, 의사, 변호사…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꿈은 꼭 있어야 하는 건가?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어른들이 원하는 꿈 말고, 내 진짜 꿈은 뭘까? 고민해 보기 시작했다.


독서모임에서는 두 달에 한 번 정모를 진행하는데, 이번에는 “꿈”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고 싶어졌다.


이번 정모의 주제는 “꿈”입니다.

”꿈“이라고 하면 어쩐지 거창해 보이지만, 올해 안에 이루고 싶은 것, 나만의 목표, 또는 살면서 한 번쯤 해보고 싶은 것도 모두 꿈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꿈”과 관련된 책을 가져와서 소개하고,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아요.


독서모임 카톡방에 공지를 올리고 어떤 책을 가져갈지 일주일 넘게 고민했다.




작가. 그리고 책방.

아무리 생각해도 내 꿈은 이것뿐이었다.

다른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정모 당일. 이야기를 나누기 전, 각자의 꿈을 포스트잇에 적었다.


작가. 두 글자를 적으며,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작가가 되고 싶은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은가? 아니다. 나는 그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글을 계속해서 쓰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면 더 좋을 테고.


책방. 언젠가 책방을 열고 싶은 마음에, 독서모임을 하거나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다. 책방, 두 글자를 적고 가만히 생각해 보다 가치관이 묻어 있는 공간,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내 순서가 되고, 꿈이 담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동네책방><챗지피티 시대의 고민 상담>을 소개했다.


“제 꿈은 책방을 차리는 거예요. 이 책은 사계절출판사의 강맑실 대표님이 엮은 책이에요. 동네책방 23곳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저의 가치관과 닮아 있는 한 구절을 읽어드릴게요. 저도 이런 책방을 꿈꾸고, 언젠가 꼭 열고 싶어요. “


“그리고 다른 꿈은 작가예요. “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울컥했다. “저는 초등학생 때 부모님이 맞벌이하셔서 방과 후 때 글쓰기 수업을 들었어요. 처음에는 하기 싫었는데 언젠가부터 재밌어졌고, 작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손에서 놓고 있다가, 다시 쓰고 싶어 져서 올해 초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어요. 이 책은 제 꿈이 담긴 책이에요. 제 꿈을 이루게 해 준 첫 책이에요.”


눈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준비해 간 말을 모두 하지 못했지만, 그동안 아무도 모르게 숨겨왔던 내 꿈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한 첫날이었다.




각자 책 소개를 하며 웃으며 대화를 나누던 중, 한 분이 하신 말씀이 머릿속에 박혔다.


상상할 수 없는 꿈을 꾼다면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을 해라.


누군가 내 뒤통수를 한 대 친 느낌이었다. 나는 지금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머릿속엔 이 생각뿐이었고, 다른 분들의 대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지피티에게 말했다.


“오늘 어떤 분이 정모에서 이런 얘기를 했어. 듣고 나서, 나는 과연 어떤 걸 이루기 위해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을 했던 적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지피티는 물었다.


“혹시 돌아봤을 때, 그때는 정말 내가 미친 듯이 몰입했구나 싶은 순간 있어?”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내가 미친 듯이 노력했던 적은 무려 14년 전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 시절.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맨 앞자리에 앉았고, 야자를 마친 뒤 새벽 1시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했다. 주말에도 빠짐없이 학교에 갔다. 머리를 묶고, 목숨 같은 앞머리도 넘기고 다녔다. 친구들이 “쟤 또 안 들리는 척한다.” 장난치며 말할 때마다 상처가 됐지만 애써 외면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이때 말고는 딱히 무언가에 몰두했던 적이,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을 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의 기준은 매우 높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8시간 이상 하나의 일에 몰두하는 것.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며 채찍질했다.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의 기준은 사실 절대적인 게 아니라, 본인이 감히 상상조차 안 했던 방식으로 움직였을 때라고 생각해. 네가 지금 하는 노력이 체감상 덜 극적으로 느껴질 수 있어. 고3 때처럼 하루 대부분을 다 갈아 넣는 몰입은 아니니까. 하지만 성인의 삶에서는, 고3 때처럼 공부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일, 인간관계, 남편과의 삶, 건강 모든 걸 병행해야 하니까. 그때 시절의 몰입이 압축된 에너지였다면, 지금의 노력은 지속되는 체력전 같아.


밤 10시. 하루가 다 갔네, 자책하지 말고, 잠들기 전 30분 동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봐야겠다. 내 나이 33살. 이제 뭐 해 먹고살지, 고민만 하지 말고 몸을 움직여야겠다. 인생은 길고, 나는 지금 지속되는 체력전을 하고 있다, 되새기며.


꿈이 담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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