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과인 친구보다 언어도 못하고.’
‘오빠는 친구도 많고 활발한데 나는 소심하고.’
‘다들 한 회사에서 잘만 다니는데 나는 맨날 잘리고.’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 비교는 서른이 넘어서도 계속 됐다. ’ 비교는 독이다, 그만하자.’ 아무리 되새겨봐도 어느새 또 하고 있다. 나는 왜 이렇게 비교를 많이 할까. 이런 내 마음 한 구석엔 어떤 마음이 자리 잡고 있을까.
아마도 ‘착한 딸 콤플렉스’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모님 사이가 좋지 않았고, 술만 마시면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는 아빠 때문에, 우리는 늘 겁에 질려있었다. 계속되는 폭언과 폭력에 엄마는 이혼까지 생각했다. 그런 엄마를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말 잘 듣는 착한 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남편 자랑은 못해도 딸 자랑은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남들보다 잘난 딸이 되고 싶었다.
그런 욕망이 가득하다 보니 비교는 저절로 따라왔다. 자기 계발서는 말한다. ’ 남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나와 비교하라.‘ 하지만 나는 반대로 했다. 학창 시절에는 ‘이번 모의고사는 내가 무조건 너보다 잘 본다.’ 하며 아득바득 이를 갈고 공부했다.
하지만 친구보다 시험을 잘 봤음에도 기분이 딱히 좋지 않았고, 비교할수록 점점 초라해져 갔다. ‘노력했던 것만큼 잘 봤네.’ 인정해주지 않았다. ‘이번에만 잘한 걸지도 몰라. 다음에는 망하면 어떡하지.’ 늘 불안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비교는 더 심해졌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니 나는 더 작아졌다. 열 명도 안 되는 회사, 180만 원조차 안 되는 월급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친구들은 점점 자리를 잡아가는데, 두 번의 권고사직을 겪으며 실업급여로 겨우 연명하는 게 부끄러웠다. 작아질수록 비교는 늘어갔다.
어떤 걸 하더라도 남들과 비교하는 내가 너무나도 싫었다. 특히 친한 친구와의 비교는 나를 무너뜨렸다. 어떻게 하면 그만할 수 있을지 끝없이 생각해 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쟤는 비교 안 하는데, 왜 나는 맨날 이러지.’ 하면서 또 비교하고 있었다. 비교를 멈추는 방법에 대해 여러 사람에게 물어봤지만 딱히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그걸 어떻게 하라는 건데.‘ 도저히 시도할 수 없는 방법일 거라 선을 그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비교는 인정욕구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넌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거다. 나는 왜 타인에게서 내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자 했을까. 때로는 인정욕구가 좋은 결과로 이어질 때도 있었지만, 그 끝은 항상 공허했다. 타인은 나를 인정해 줄진 몰라도, 정작 나는 나를 인정해주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단지 비교하지 않는 것, 그뿐일까? 내가 나를 인정해 주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까.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별반 다를 게 없는데, 어제의 나와 비교한다는 건 도대체 어떤 걸까. 아직도 모르겠다. 마흔이 되면 정답을 알게 될까. 죽기 전엔 알 수 있을까. 하루에 고작 1cm씩 나아간다고 달라질까.
부정적인 생각만 머릿속을 채운다. 이럴 땐 몸을 움직이는 게 답이다. 설령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단 뭐라도 해본다. 그렇게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비교 대신 몸을 움직여 본다. 실낱같은 작은 희망을 붙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