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 끝에, 책에서 길을 찾다

by 다은

등교하는 아이들, 출근하는 직장인들. 다들 어딘가로 바쁘게 움직이는데, 나만 제자리인 것 같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어떤 것도 시작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밑바닥까지 가라앉기 전에 집을 나섰다. 걷고 또 걷다 발걸음이 닿은 곳은 도서관이었다. 책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수많은 책 속에서 눈에 띄었다. “꿈은 크게 가져야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소리치는 세상에서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괜찮아” 속삭이는 듯했다.


뭔가 부족하다면 어떤 식으로든 움직여야 한다. 앞으로든, 옆으로든, 하다못해 뒤돌아 가더라도. 영원히 멈춰 있으면서 지금 이대로 유지할 수는 없다.


조심스레 집어 들어 읽어 내려가다 시선이 멈추었다. 지금까지 나만 멈춰 선 것 같다며 자책만 하고, 무언가 시도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구나.


2017년 8월 3일, 첫 권고사직 이후 방황하던 시기에 쓴 글이 떠올랐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인지도 모르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분명 길이 보일 거야.


하지만 지난여름에 했던 다짐과는 다르게,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뒤돌아 가지도 않았다. 두 번째 회사에서도 권고사직을 당하고 나서야, 이제는 정말 움직여야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일까. 고민 끝에 떠오른 건, 단 한 가지였다.


사람들이 했던 말들이 스쳤다. “다은 씨는 퇴근하면 뭐 해? TV도 안 보고, 게임도 안 하고. 무슨 재미로 살아?”


드라마도, 유튜브도, 웹툰도 안 보는 나의 오랜 취미는 독서였다. “책 읽는 재미로 사는데요.” 수없이 되뇌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에서 보았던 문장이 떠올랐다.


내가 정말 좋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솔직하게 표현하고 남들의 취향에 대해서도 무시하지 않아야 세상은 여러 색으로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은 “책이 뭐가 재밌어?”라는 답변이 돌아올 게 뻔해서, 내 취미를 알아주지 않을 그들에게는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아서,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하지만 이제는 솔직해지기로 했다. 독서 노트에 한 글자씩 옮겨 적으며 다짐했다. ‘나만의 색을 찾아가자.’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엄마 손을 잡고 갔던 동네 도서관. 내 키보다 큰 책장 사이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할 때면, 숲 속에서 보물을 찾은 것처럼 기뻤다. 도서관이라는, 책으로 가득한 숲을 거니는 순간이 제일 행복했다. 그 순간만큼은 성적 때문에 혼내던 아빠도, 해고를 통보하던 사장님도 잊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책이었구나 깨달은 순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느라 옅어졌던 나만의 색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그렇게 방향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과 함께라면 일하는 순간들이 행복할 것 같았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고 설렜다.


지금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했다. 책 리뷰를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든 것이다.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었다. 책은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책도 있어요” 알리고 싶었다.


낯선 사람만 보면 울었던 어린아이, 처음 본 사람과 한마디도 못 나누던 소심한 여고생이, 책에 대한 마음 하나로 독서 모임에 가입했다. 안산에서 신촌까지 왕복 세 시간이 걸렸지만,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눌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첫 모임에 참석했던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반갑게 맞아주던 모임장 언니, 선물로 받았던 책갈피와 독서 노트까지. 꿈같았던 하루가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인생은 말이지, 흘러가야 할 곳으로 흘러가게 되어있어. 그러니까 네가 좋아하는 걸 해도 괜찮아.

나카무라 유 『할머니의 행복 레시피』


2018년 8월 25일 첫 모임에서 받았던 책갈피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흔들릴 때마다, 잘하고 있는지 걱정될 때마다, 이 문장을 떠올린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할 수 있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나를 다독인다.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큰 시련이라 여겼던 순간이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기도 하고, 열심히 준비했음에도 실패할 때가 있는가 하면, 가볍게 시작한 일이 잘 풀리기도 한다.


헤매던 끝에 책에서 길을 찾았다.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지든, 책이 나를 이끌어줄 것이라 믿는다. 언젠가 내가 원하는 길에 닿을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한 걸음 내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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