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다

탄생과 죽음

by 최다은

늘 그렇듯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에 몸을 실으려던 차였다. 비는 소리 없이 땅을 적시고 있었고, 갑작스러운 비 소식에 우산을 쓴 사람과 쓰지 않은 사람은 반씩 섞여있었다.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고, 신호등 밑에 적힌 숫자는 빠른 속도로 카운트다운이 되었다. 그때 저 멀리서 유모차를 끄는 할머니께서 신호가 끝이 날 새라 급하게 달려오시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할머니의 걸음걸이는 꽤나 불안정해 보였고, 비가 내린 탓에 길은 평소보다 미끄러웠을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횡단보도 문턱에서 할머니는 잡고 있던 유모차를 놓치시고 그 자리에 그대로 넘어지셨다. 웬만한 일에는 잘 나서지 않는 성격의 나도 반사적으로 저 멀리 엎어진 유모차를 일으켜 세우기 바빴다. “고마워요.” 한참을 땅에서 못 일어나시고 계신 할머니를 급히 일으켜 세우기 위해 오신 일행분이 나에게 말했다. 어정쩡한 폼으로 뒤에 서있던 나도 할머니를 잡고 일으켜 세워 드릴까 하다가 할머니를 향해 “땅에 좀 앉아 있다가 일어서~”라고 말하는 일행분의 말을 듣고(아마 다리 힘이 풀리셔서 그게 다 회복이 될 때까지 땅에 앉아 있으라고 하신 모양) 그냥 가던 길을 마저 가기로 했다. 그때 언뜻 ‘어휴, 죽어야지.’라고 작게 읊조리는 할머니의 말이 내 귀를 스쳐 지나갔다. 자기 몸 하나도 자신이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비탄스러운 사실에 자연스레 나온 자학이었을까. 나는 그 말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일정을 다 마치고 자주 가는 카페로 발길을 쏟는 중 비는 한참 전에 그쳤고, 사람들의 손엔 유행하는 악세사리처럼 각자의 우산이 들려있었다. 그때 맑게 갠 하늘 아래로 포대기에 쌓은 아기를 혹여나 누가 채가진 않을까 품 안에 소중히 가둔 아주머니가 지나쳐갔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 사람이 태어나면 그 어떤 일과도 비교되지 않게 축복을 받곤 하는데 나이가 들고 늙으면 이 세상 모든 보잘것없는 존재보다 더 가치 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태어났을 땐 태어난 것 자체만으로 나의 가치를 인정받는데 태어나고 나면 나의 가치가 쓸모없다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평생 애를 써야 한다. 그렇다면 엄마 뱃속에 있는 열 달이 사실은 내 가치를 제일 인정해 주는 때가 아닐까?


​나이가 든다는 게 뭔지.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게 뭔지. 사는 게 뭔지. 이런저런 생각에 하늘은 맑게 개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좀 전 비 내리던 때와 같이 금세 싱숭생숭해졌다. 젊음의 빛에 멀어질수록 쇠락하는 건 자연의 섭리이지만, 그걸 담담히 받아들이는 건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힘든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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