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 사랑을 믿는 누군가에게
살면서 여러 드라마와 영화를 보다 보면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 인생에 찾아올 운명 같은 사랑을 자연스레 꿈꾸게 되곤 한다. 서로가 없이는 죽고 못 사는, 돌고 돌아도 결국 다시 만나게 되는, 심지어는 동화 속 익숙한 해피 엔딩처럼 영원을 약속하는 그런 사랑 말이다. 하지만 몇 번의 연애 끝에 사랑의 본질을 의심하는 상태까지 이르게 되면 사람들은 서로가 균일한 마음으로 하는 연애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이내 깨닫게 되고 만다.
<500일의 썸머>를 처음 보았을 당시 나는 ‘사랑’에 기대하는 게 많던 고등학생이었다. 그 때문인지 영화를 처음 볼 땐 보는 내내 썸머가 나쁜 년이라는 생각을 줄곧 했고, 썸머에게 첫눈에 반한 톰에겐ㅡ사랑이란 트랩에 잘못 걸렸다는ㅡ값싼 동정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썸머는 톰의 열렬한 구애에도 시큰둥하며, 톰과 함께하는 시간에도 내내 딴생각을 하는 것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썸머는 나쁜 년’이라는 각인이 어느 정도 흐려졌을 무렵 나는 모처럼 이 영화를 다시 보기로 했다. 그렇게 다시 본 <500일의 썸머>는 전에 봤던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내게 너무 다르게 다가왔다. 나는 썸머에게 ‘나쁜 년’이란 오명을 기꺼이 지워주고,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말까지 전해주고 싶었다. 그때쯤의 나는 아마 길진 않지만 짧은 연애를 몇 번 하고 난 뒤였을 거다.
사람들은 보통 연애를 시작하기 전엔 지금껏 사귀었던 전 연인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사랑을 키워나갈 거란 다짐을 하거나 서로에게 둘도 없는 1순위가 될 것이란 결심을 하곤 한다. 하지만 막상 연애를 시작하고 나면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는 사실을 절절이 깨닫는다.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나 성격 때문일 수도, 아니면 각자가 처해있는 상황이나 환경 때문일 수도, 그것도 아니라면 동일하지 않은 마음의 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게 뭐가 됐든 중요한 사실은 지금껏 사귀었던 전 연인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사랑을 키워나가는 일이나 서로에게 1순위가 되는 일은 정말 ‘운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라고 납득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나 또한 운이 좋았던 적도 있고, 나빴던 적도 있다. 나는 상대방이 1순위인데 상대방은 아니었던 적도 있고, 상대방은 내가 1순위인데 나는 아니었던 적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할 확률이 얼마나 낮은 지. 그건 수많은 만남과 엇갈림, 헤어짐 끝에서야 겨우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렇게 도출한 결과는 '썸머는 나쁜 년이 아니다. 나도 누군가에겐 썸머가 될 수 있다. 단지 톰이 썸머를 더 많이 좋아했고, 썸머는 톰이 썸머를 좋아하는 만큼 톰을 좋아하진 않았던 것'이란 결과였다.
<500일의 썸머>는 우리가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극히 보통의 연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연애를 하면서 느낄 수 있는, 느껴봤을 법한 감정을 이 영화는 담고 있다. 그래서 처음엔 너무나 적나라하게 묘사되는 사랑의 불균형에 나는 썸머를 욕한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는 마음은 비단 영화 속 톰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니까.
어쩌면 당신이 내 반쪽이고 운명이라는 섣부른 생각은 연애를 하는 데 있어 오히려 관계를 위태롭게 만드는 촉진제 같은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스스로 조바심을 내게 하고, 상대방에게 집착하게 만들며, 이별 뒤엔 커다란 후폭풍을 남기게 만드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만큼 그 사람이 순수하다는 확실한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서로가 나의 반쪽이고 운명이라고 믿는 생각만큼 사랑을 크게 만들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운명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수없이 존재하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닐까.
따라서 나는 이 글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랑에 실패했어도 너무 낙담하지 말라고. 사랑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우리는 그때까지 크고 작은 경험을 통해 사랑에 대한 경험치를 쌓아 나가면 그만이다.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는 썸머를 덤덤히 마주 볼 수 있게 된 톰처럼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사랑의 경험은 우리를 전보다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당신의 찬란한 여름은 아직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