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다

종일반에 남겨진 아이를 찾아가세요

by 최다은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이야기다. 그 당시 내가 제일 부러웠던 아이는 얼굴이 예쁜 아이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집이 부유한 아이도 아니었다. 그 당시 내가 제일 부러웠던 아이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엄마가 집에 있는 아이였다.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면 “그래, 왔니?”라고 반갑게 맞아주는. “배고프지?”라며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주는 그런 엄마.


우리 집은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다. 그래서 나는 어린 나이부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열쇠를 쥐고 문을 열고 잠그는 일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귀가 후 적막이 켜켜이 쌓인 집에 가는 일에도 말이다. 그건 어린 나이임에도 그다지 달가운 일은 아님에 분명했다.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만 해도 우리 집엔 막내 삼촌이 같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 유치원 버스를 타고 아파트 단지 입구에 도착했을 때 막내 삼촌이 마중을 나오면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건 그 어릴 적에도 감히 잊을 수 없는 반가움과 고마움이 아니었을까. 그게 아니면 엄마를 대신할 존재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다시 초등학교 때로 돌아가서 나는 비슷한 맥락으로 갑작스레 비가 내리는 날이 가장 싫었다. 그런 날엔 아이들의 하교 시간에 맞춰 우산을 들고 나온 누군가의 엄마들로 교문이 항상 붐볐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그 시절은 스마트폰은 세상에 아예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고, 그나마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아이도 전교에 몇 안 되던 시절에다가, 어차피 내가 하교를 할 시간 즘엔 부모님 두 분 모두 근무 시간이었기 때문에 난 항상 창밖으로 보이는 그 풍경을 질투 반, 부러움 반으로 바라만 볼 수밖엔 없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종례가 끝나면 으레 그렇듯 실내화 가방을 머리 위에 올리고 집까지 동분서주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부터 층층이 쌓여 온 그런 기억들 때문일까.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던 지난날들을 떠올리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나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날씨가 덥든 춥든 햇살이 내리든 비가 내리든 간에 오로지 나 하나 오기만을 위해 진득이 기다리고 있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의 실루엣이 나의 시야에 맺히면 나는 번번이 세상의 모든 걸 얻은 것만 같은 행복한 여자가 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입가엔 금세 환한 미소가 번져갔고, 나의 양팔은 자연스레 그의 단단한 어깨를 감싸곤 하였던 걸 보면 말이다.


이제는 종일반에서 해가 저물도록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작은 아이는 없다. 어릴 적에 생긴 마음의 빈 구석에도 꽤 먼지가 쌓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길 바라는 마음이 아직까지 여전한 걸 보면 외로움에 절여진 기다림이란 이토록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매번 사랑을 시작하기에 앞서 항상 이별 없는 사랑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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