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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은 Feb 12. 2023

지나가다

 한 번 말을 섞은 것이 무색하게 혼자 제멋대로 사랑에 빠져놓고선 닿지도 않을 인연의 끈만 내내 어루만진 지난날의 기억. 그 기억은 억만 겹의 시간을 삼켜 몸집이 작아지고 말았지만. 가끔 나는 손등에 닿자마자 녹는 첫눈처럼 우리가 그때 미처 못다 한 이야기를 다시 잇는다면 어떨까 하고 또 한 번 제멋대로 상상에 빠지곤 한다.


 ​최근에 본 인스타 릴스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릴스가 생겼다. <안녕하세요>에서 신동엽이 한 말인데 걱정이 너무 많아 주변을 힘들게 하는 친구에게 영원히 증명할 수 없는 것을 고민한다며, 조언을 해주는 릴스였다. “영원히 증명할 수 없는 것을 고민한다” 그 말이 한동안 머릿속에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내가 그때 그걸 했으면 어땠을까. 내가 저 때 저걸 했다면 어땠을까. 항상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은 명제를 가지고 우리는 잠 못 이루는 밤을 영위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야 할 건 그때도 저 때도 아니고 지금이라는 걸. 못다 한 이야기는 그 이후 만남이 이어진 것이 아니라면, 못다 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때로 그냥 완결된 이야기가 될 뿐이다.


 ​뻔하디 뻔한 로맨스 영화에선 온갖 역경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만났다는 이야기를 떠들어대지만, 우리는 나를 작아지게 만들고 쉽게 잠 못 이루게 하는 사랑이 과연 사랑의 본질일까 하는 의구심을 품을 필요가 있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선 흥미로운 스토리가 필수불가결한 법이지만, 현실에선 굳이 로미오와 줄리엣이 되지 않아도 꽤나 근사한 사랑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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