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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은 Aug 02. 2023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건

 서울에 온 지도 어느덧 3주라는 시간이 다 되어간다. 옵션이 하나도 없는 집에 들어와서 사느라 일반적인 원룸이나 오피스텔에서 사는 것보다 시간과 품이 정말 많이 들고 있다. 입주 전에 진행한 셀프 페인트칠은 말할 것도 없고. 창틀 끈끈이 제거, 세탁기 A/S, 방충망 셀프 보수, 기타 등등…. 전에 살던 사람이 집을 그리 깨끗하게 쓴 편이 아니라서 하나부터 열까지 손을 안 볼 수가 없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더군다나 이사를 막 왔을 땐 가구라곤 매트리스 하나 덜렁 있어서 물건을 쓸라 하면 허리를 계속 숙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 때문에 허리가 너무 아팠다. 그래도 어찌저찌 점점 사람 사는 집의 구색이 맞춰져 가고 있다. 이제는 이곳에서 보내는 일상의 루트도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이사 온 첫날, 적막 속의 새벽이 무서워 편히 잠을 잠들지 못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혼자 잠드는 일에도 꽤나 익숙해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직까진 서울에서의 생활이 그리 메리트가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이곳에 오고 나서 내가 안산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달아가고 있다. 집 앞 식물원, 번화가의 자주 찾던 단골 식당과 술집, 한적함과 여유로움. 무엇보다 내가 거의 매일을 들락거리던 카페가 너무 그립다. 걸어서 갈만한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내겐 그곳이 나의 하루의 시작과 끝이었다. 너무 시끄럽지 않음 음악, 넓고 편안한 테이블과 의자, 사장님의 반려견인 연근이, 기분 좋은 커피 향, 따듯한 바닐라라떼, 맛있는 디저트.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게 그곳만큼 완벽한 카페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느껴진다. 그렇기에 내가 그곳의 단골이 된 건 어쩌면 정말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이처럼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건 야속하게도 잃어보고 나서야 더 절절히 느끼는 것 같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 내가 정말 사랑했구나 느끼는 순간은 내가 사랑했던 것을 잃어보고 난 후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가 자주 쓰는 물건, 자주 가는 장소, 자주 만나는 사람이 정해지는 건 내가 그만큼 그것들에, 그 사람들에 애정을 쏟아서다. 익숙함이란 건 그런 의미에서 정말 무서운 감정이 아닐 수가 없다. 내게 그 대상이 아닌 다른 대상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익숙함이란 감정을 사랑하는 나 같은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어찌 됐든 아직은 완전한 혼자가 익숙지 않은 요즘, 오래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사무치게 읽고 싶은 건 익숙함으로의 회귀일까? 아니면 그저 이 공허한 마음을 채우고 싶은 한 가지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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