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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다

디버깅 (Debugging)

by 최다은

주말 아침부터 나부끼는 진눈깨비의 형상을 눈에 가득 담아본다. 아무 생각도 문장도 담지 않고 그저 멍하니 창밖의 풍경만을 응시하고 싶은 순간. 그러다 문득 매일 드나들어 지금은 너무나 익숙한 길목의 풍경이 불과 2년 전만 해도 감히 상상할 수도, 떠올리지도 못하던 풍경이었음을 깨닫는다.

근 몇 년간 과거를 들춰보기엔 지금 당장의 현실이 버거워서, 추억에 잠길 틈도 없이 살아왔던 것 같다. 닿고 싶어 손을 뻗어도 이제는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새삼스러워진 기억의 파편들. 올해부터 30대가 되고 나니 더욱더 그렇다. 20대의 내가 또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스무 살의 내가 10년 뒤를 생각하면 되었을 지금의 나. 그런 생각을 하면 스무 살의 나에게 조금 미안해진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이 네가 꿈꾸던 모습이 맞을까 싶어서.

몇 년 전과 비교했을 때 지금의 나는 사는 곳이 달라졌고, 새로운 직장에 다니게 됐고, 뉴욕에 또 한 번 다녀오게 되었고, 어울리는 사람들이 달라지게 되었다. 그래서 넌 지금 삶에 만족해?라고 물으면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지만. 꿈꾸던 인생과는 조금 떨어진 서른 살의 지금 이 시기를 나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인생 디버깅 시기라고.

그리고 마흔 살의 내 삶을 새로 꿈꿔본다. 그때쯤이면 결혼도 하고, 나 닮은 예쁜 자식도 있겠지? 그때쯤이면 또 그때만의 고민과 걱정거리가 새로 있겠지? 지금의 나로서는 마흔 살의 내가 또렷이 그려지지 않지만, 서른 살인 지금의 내가 십 년 앞서 듬뿍 응원해 주고 싶다. 너무 걱정 말라고. 결국엔 다 잘 될 거라고.

그때쯤이면 지금 쓴 이 글을 읽으면서 빙긋 웃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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