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다

빌라

by 최다은

어느 날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왜 빌라에 살아?"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나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지만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친구의 표정을 보니 악의를 담고 내게 그런 질문을 한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두운 골목길, 얼기설기 얽혀있는 가로등, 그리고 각 건물마다 내놓은 쓰레기들. 굳이 따지자면 빌라는 쾌적한 주거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우리 집은 빌라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좋고 나쁘다는 인식을 하기도 전에 그 시절의 나에게 ‘빌라’의 의미는 단순히 주거 환경이 바뀌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줄곧 붙어 다녔던 반 친구는 우리 집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수능이 끝나고 나서 나는 곧장 그 친구의 집에 자주 놀러 다니곤 하였다. 그 아파트는 20년도 더 된 전형적인 옛날 아파트였지만 내부 인테리어는 리모델링을 마쳐 새 아파트에 뒤지지 않았다. 그때쯤 내가 사귄 남자 친구는 우리 집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풍족한 집안이었다. 비록 우리는 지하철로 1시간 30분 거리에 살고 있었지만 언젠가 나는 남자 친구가 우리 집 앞까지 나를 데려다 줄 상상을 하곤 했었다. 그런 상상을 하다 보니 골목길 구석 외진 곳에 박혀있는 우리 집이 더없이 작게 느껴졌다. 그 시점 공교롭게도 우리 집은 이사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엄마에게 강력히 아파트로의 이사를 피력했었다. 부동산을 통해 몇 번인가 그 친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같이 보러 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엄마는 헌 아파트로 가기엔 돈이 아깝고, 새 아파트로 가기엔 돈이 부족하다며 우리 집은 결국 1년 뒤 다른 동네에 있는 빌라로 이사하게 되었다.


비록 우리는 지하철로 1시간 30분 거리에 살고 있었지만 언젠가 나는 남자 친구가 우리 집 앞까지 나를 데려다 줄 상상을 하곤 했었다. 그런 상상을 하다 보니 골목길 구석 외진 곳에 박혀있는 우리 집이 더없이 작게 느껴졌다.



왜 하필 빌라일까? 차마 쉽게 대답할 수 없었던 그 질문에 엄마는 관리비도 없고, 돈 나갈 일이 없다는 단순한 이유를 내게 대었다. 그 이유는 현실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누군가가 내게 이사를 묻는 뉘앙스의 질문을 하면, 곧장 엄마에게 들은 현실적인 대답을 하곤 했다. 그러면 다들 그 대답에 충분히 납득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도 내가 빌라에 산다는 사실이 그리 떳떳하지만은 않다. 엄마가 말한 이유가 다른 사람들의 고개는 끄덕이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단지 표면적인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혹 낯선 사람들이 우리 집 앞을 찾아오곤 하면 나는 벌거벗은 사람처럼 잔뜩 움츠러들곤 하였다.

​ 어쩌면 나의 마음속 한편엔 아직까지 세련된 아파트에 살고 싶은 욕망이 조그맣게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주거환경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고 가정했을 때 빌라를 선택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현실에 맞게, 상황에 맞게 내 앞에 놓인 선택지에 충실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 선택이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흘러간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인정하고 순응해야만 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현실에 맞게, 상황에 맞게 내 앞에 놓인 선택지에 충실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러므로 나는 10년도 넘게 지속하고 있는 빌라 생활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겉으로만 드러난 여러 사람들의 삶을 판단하지 않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현실과 욕망의 사이에서 각자의 타협점을 찾고 있는지, 실상과 환상의 경계에서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지 감히 가늠할 수 없으니 말이다. 나는 그런 복합적인 사실을 이제야 서서히 깨닫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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