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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다

시간

by 최다은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당연하게도 빌어먹을 시간은 흐르고 있다. 시간. 난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나도 두렵다. 아니, 시간이 흐르는 게 두려운 나이가 되어버렸다. 시간이 흐르는 게 두려운 어른이 되어버렸다. 아직 오려면 먼 미래를 기다리는 게 전부였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흐르는 시간에 속수무책인 그런 비겁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건 아마도 시간은 흐르고 나는 그대로라는 그리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상황 때문이 아닐까.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5년. 스물넷의 나이로 조금은 늦게 대학을 졸업한 나. “남들보다 1년을 벌었는데 그걸 도로 까먹어버리면 어쩌겠다는 거냐.” 95년에 태어나 94년생의 아이들과 같이 학교를 다닌 내게 아빠가 한 말은 나를 더 조급하게,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길 건 맞지 않는 학과에 쉴 틈 없이 쌓이는 과제, 자신 없는 시험, 엄청난 분량의 졸업논문에 안녕을 고했다는 사실. 17년을 숨 가쁘게 달려온 내게 남은 건 ‘그나마’ 취업이었다.


시간의 빠른 속도에 아직 겁을 먹기 전, 남들은 토익이다, 자격증이다 동분서주하는 와중 나는 단지 글을 썼다. 그게 내가 제일 좋아하고,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친 2013년 말부터 지금까지 700개가 넘는 글을 쓴 건 물론이거니와 작년엔 브런치 북 한 권까지 썼으니 결코 적은 수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내가 이렇다 할 성과라고 내보일 수 있는 건 딱히 없다. 내 이름으로 낸 책도 없고, 어느 공모전에 입상한 적도 없다. 그나마 가진 거라곤 나의 모든 게 들어있는 블로그 하나와 브런치 작가 타이틀 이 두 개뿐이다. 남들이 보기에 어쩌면 나는 부모 등골을 빨아먹는 한심한 ‘한량’일지도, 직장인이라면 일에 한창 몰두할 시간인 낮에 카페에 출몰하는 ‘백수’일지도,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자신만의 이상을 추구하는 ‘몽상가’일지도, 이 모든 게 아니라면 진정 꿈을 향해 부지런히 정진하는 젊은 ‘청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말미에 적은 타이틀보다는 앞서 열거한 타이틀에 나를 끼워 맞추지 않을까? 나는 그런 못된 생각을 해본다.


요즘 나는 시간이라는 해적에 인생을 저당 잡힌 불쌍한 선원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자꾸만 어긋나는 인생의 항로에 우울함, 자괴감, 불안함이라는 태풍까지 휘몰아치니 운전대에 놓인 내 두 손은 자꾸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샤워를 하다가도, 멍을 때리다가도, 잠에 들려다가도 ‘내가 원하는 목표에 다다르지 못하고 이렇게 시간만 가버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면 나의 두 눈은 갑작스레 캄캄해지고, 숨은 턱 막힌다. 친구들을 만나는 게 꺼려진다. “요즘 뭐해?”라는 질문을 저 깊은 지하 속에 꼭꼭 잠가 두고만 싶다. 나를 보는 시선이 괜히 좀 불편하게 느껴진다. 마음처럼 풀리지 않으니까 나는 예전의 나와는 다르게 자꾸만 부정적이게, 그리고 냉소적이게 변해만 간다. 자꾸 누군가의, 무언가의 탓을 하게만 된다. 현실의 잣대로 모든 걸 판단하게만 된다.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는, 다소 무책임하고 대책 없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던 ‘나’는 어디로 갔는지. 시간이 흐르는 게 무엇보다 겁이 나는 건 시간이 흐를수록 지금껏 내가 했던 모든 노력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폄하하기 시작한다는 것.


이십 대의 끝자락에 갈수록 느리게 가던 시간은 가속도를 붙이고, 보잘것없는 청춘의 민낯은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1년, 1년은 무거운 쇳덩이처럼 나를 짓누르며 나는 조금씩 나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놓게 되어 간다. 솔직한 말로 나는 이제는 정말 잘 되고 싶다. 누군가는 질투하는, 누군가는 우러러보는, 누군가는 배우고픈 그런 자리에 올라가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가족의 인정을 받고 싶다. 그래서 숨 좀 제대로 쉬고 싶다. 바닥에 깔린 인생이라도 위를 올려다보는 건 공짜니까. I trust myself. 나는 언제쯤 이런 뻔한 말에 증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올해 크리스마스엔 제법 행복한 웃음을 지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두 시간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버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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