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cm 56kg. 내가 한창 모델 준비를 할 때의 신체 스펙이다. 모델. 나는 모델이 되고 싶었다. 때는 2014년 4월 말, 한여름에 내리는 폭설처럼 나의 가슴엔 느닷없이 모델이라는 생경한 꿈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훨씬 큰 키에 어렸을 때부터 줄곧 모델을 한 번 해보라는 말을 들은 영향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무모한 자신감에 빠져 엉뚱한 꿈을 그려보게 된 걸까? 이유가 어찌 됐든 간에 어느새 나는 모델이라는 새로운 도전 앞에 서있었고, 그 꿈은 매일 늘어진 낮잠을 자는 것만 같던 나의 생활에 엄청난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다.
모델을 하려는 결심을 한 이후 내가 처음으로 한 일은 단연 다이어트였다. 178cm에 64kg이 나가던 나는 정상 체중도 넘지 않는 범주였지만, ‘모델’이라는 타이틀을 달기 위해선 여기서 적어도 10kg은 감량을 해야 했다. 군것질은 끊고, 식단은 저염식 식단으로. 그리고 매일 1-2시간은 간단한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으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조금 안 돼서 64kg에서 2kg를 뺀 나는 모델 준비를 도와주는 아카데미에 상담을 하러 갔다. 모델 장윤주, 송경아, 한혜진이 몸담고 있는 소속사 에스팀의 산하 아카데미였다. 상담실엔 나 말고 모델을 꿈꾸는 남자애 두 명도 있었다. 이사는 내 신체 스펙을 보더니 “키는 딱 좋아요. 런 웨이 하기엔 딱 적합한 키네.”라는 다소 긍정적인 답변을 보였다. 두꺼운 검정색 뿔테 너머로 그녀의 어두운 눈빛을 느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곧이어 덧붙인 그녀의 말에 나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몸무게가 너무 빅. 키도 크고, 몸무게도 많이 나가고.” 나는 나 말고 다른 이들도 있는 곳에서 그런 얘기를 듣는 상황에 낯이 굉장히 뜨거워졌다. 그러나 그녀가 하는 말은 감히 부정할 수 없는 내게 놓인 현실 그 자체임이 분명했다.
상담을 다녀온 며칠 후, 에스팀 아카데미에서 정규반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정규반에 들어가기 위해선 일종의 오디션을 봐야 했다. 내겐 약 2주도 안 되는 시간이 주어진 셈이었다. 오디션에 보인답시고 노래도 연습해보았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것 같아 이내 그만두었다. 오디션 당일 아침 날, 조금이라도 날씬해 보인답시고 아침밥도 포기한 나는 왕복 3시간 거리의 압구정을 향했다. 대기 장엔 각자의 긴장감으로 고요와 적막 그리고 약간의 탐색전이 존재하고 있었다. 형식은 이랬다. 본인의 순서가 다가오면 대기 장에서 커튼 뒤로 가서 다시 한번 기다린다. 그리고 마침내 본인의 이름이 호명되면 5명씩 커튼 앞에 가서 있다가 사인(Sign)과 함께 워킹을 뽐내며 심사 진 앞에 선다. 면접이라면 항상 자신에 차 있던 나도 이런 형식의 면접은 또 처음이라 심장은 터지다 못해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며칠 뒤 오디션에 합격했단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6월 중순부터 9월 하순까지. 아카데미에서 받는 수업ㅡ워킹, 체력단련, 메이크업, 연기, 재즈댄스ㅡ은 물론이고, 나는 '모델'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내가 되기 위해 정말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모델은 인생의 대부분을 다이어트로 보낸다던데 그 말이 딱 맞았다. 62kg였던 나는 하루 1000kcal에 맞춘 식단을 감내하며 58kg, 그리고 마침내 56kg까지 몸무게를 감량하는데 이르렀다. 정상체중에서 저체중으로 살을 빼는 과정은 과체중에서 정상체중으로 살을 빼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힘들었다. 살을 빼는 과정 속에서 나는 참을 수 없는 배고픔에 의해 이따금씩 미친 듯이 폭식을 했고, 두드러기는 물론 생리마저 안 하게 되었다. 나의 몸은 남들이 봐도 인정할 정도의 앙상한 가시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표 체중이었던 54kg까진 아직 2kg가 더 남아있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아카데미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고 아쉽게도 나는 전문반(아카데미 연습생)에 뽑히지 못했다.
그로부터 약 1년 여 간을 나는 모델에 대한 꿈을 놓지 않고 살았다. 그러나 혹독한 다이어트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함께 이어나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체중은 조금씩 불기 시작했고, 70만 원을 들인 PT를 해도 나의 몸무게는 명절을 맞은 고속도로처럼 긴 정체구간에 빠져있었다. 그렇게 어느 시점부터 나는 모델이란 꿈을 내 가슴속에서 조금씩 놓게 되었다. 내 힘으로는 한계라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 걸까? 결국 모델이란 꿈은 내게 한낱 설익은 청춘 속에 존재하던 아득한 기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봐도 나는 내가 모델을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어떤 시도도 없이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다면 적어도 한 번쯤은 ‘나도 한 번 해볼걸 그랬나?’하는 가정에 후회를 품고 살았을 게 뻔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가끔 실패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안이하게만 산다는 증거이다’라는 우디 앨런의 말처럼 종종 그 시기의 기억을 되짚어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 도전 앞에 뜨거운 열정을 녹이던 그때의 나는 앞으로도 기억 속에 영원히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