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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by 최다은

최근 압구정에 피자를 먹으러 갔다가 문득 떠오르는 궁금함에 2014년 절반 가까이를 다녔던 모델 학원에 가보기로 했다. 지하로 내려와 보니 2번 출구로 가는 계단 앞에 있던 옷 가게도 그대로였고, 벽에 덕지덕지 걸려있는 성형광고도 그대로였다. 그렇게 긴 출구를 빠져나오자 에어컨 바람이 짙게 불던 지하철에서 내려 후덥지근한 여름 공기를 마시던 싱그러운 그때가 자연스레 떠오르기 시작했다.


항상 배고픔에 절어있던 상태로 휘적휘적 길거리를 걷던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걸음을 뗄 때마다 눈부신 젊은 날의 기억은 날 참 새삼스럽게 만들었다. 당이 떨어져 손이 덜덜 떨리는 때만 사 먹던 던킨 도넛, 고소한 패티 냄새를 풍기던 버거킹, 상담을 받고 난 다음 그린 티 라떼를 마시던 카페 베네. 그 모든 건 바뀌었고, 허물어져있었다.


기억 속의 나는 여전한데 오늘날의 압구정은 허전했고, 쓸쓸하기만 했다. 나나 압구정이나 활기가 넘치던 예전에 비해 지금은 더없이 초라하고 볼품없는 것 같아서 괜히 왔다 싶었다. 왠지 슬퍼지는 기분에 꺼내면 쏟아질 것만 같은 추억을 그냥 그대로 두었다. 눈에 보이는 현대아파트의 낡은 외관에 괜히 더 눈길을 쏟았다. 시간이 참 많이도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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