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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다

당신의 선택은

by 최다은

언제부턴가 나는 나의 선택을 남에게 맡기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어떤 음식을 먹을지 말지에 대한 자잘한 이슈부터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꽤나 무거운 이슈까지. 선택은 물론이고, ‘혼자’ 하는 것에 더할 나위 없이 강인했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그건 아마 상황적인 것도 있지만, 나를 대신해 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더욱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어제 하루만 곱씹어 봐도 그렇다. 나는 늘 자주 가는 동네 카페에 가서 작업을 할 계획이었다. 마침 카페에선 새로운 메뉴로 와플을 개시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를 시키고선 잠깐 동안 수없이 갈등했다. 머릿속에선 이미 와플을 먹는 것까지 계산해서 아메리카노를 시켰지만, 내겐 좀 더 신중한 확인사살이 필요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와플을 먹을지 말지에 대한 문제를 논의할지 떠올렸다. 왜냐하면 나는 요 근래 극심한 생리통 때문에 밀가루, 우유, 유제품, 고기 등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마 나는 누군가와 논의하며, 와플을 먹는 것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어떻게든 찾아내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내 머릿속엔 ‘내가 먹는 것을 왜 내가 아닌 남에게 물어보려 하지?’라는 아주 당연하고도 우스운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와플을 계산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와플을 먹어야 될 이유는 굳이 쥐어짜내지 않아도 충분했다. 첫 번째, 내가 먹고 싶으니까. 두 번째, 내가 배고픔을 느끼니까. 세 번째, 어제 무리해서 움직였으니까.




생각해보면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아닌 남에게 내 선택을 돕는 역할을 습관적으로 나누어 주고 있었다. 그런데 과연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선택을 내가 아닌 남이 대신해준다고 해도 팀이 아닌 이상 모든 책임은 내가 지는데? 와플을 비유로 들어도 그렇다. 와플을 먹음으로써 느끼는 행복과 약간의 죄책감. 와플을 먹지 않음으로써 느끼는 허기와 약간의 뿌듯함은 모두 다 내 몫이다. 하물며 와플을 먹니 마니 하는 것도 이런데 나의 진로에 대한 문제는?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선택 A와 세상이 바라는 좀 더 그럴듯한 선택 B가 내게 놓여 있다고 가정해보자. 둘 다 잘 풀리면 무척 좋겠지만, 만약 A가 실패하면? 나는 내 선택을 되돌아보고 또 다른 나의 길을 가면 된다. 그러나 여기서 B가 실패하면? 나는 내게 B를 권유한 사람 또는 사람들 탓을 하거나 지난 선택을 A에 비해 더욱 후회할 것이다. 공통적인 것은 A와 B 둘 다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남’이 아닌 ‘내’가 진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행위가 무조건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게 습관이 되면 삶은 꽤나 피곤해질 수 있다. 남에게 의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나중엔 그 빈자리를 나 혼자서 메꿔야 할 수도 있다. 남이 아닌 ‘내’가 주체가 되는 삶. 무언가 선택을 하는 사소한 행위만으로 우리는 ‘나’의 권위를 되찾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내가 만든 내가 될지, 남이 만든 내가 될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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