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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쓰다

빵가루

by 최다은

중앙동에서 집까지 걸어 집 코앞에 도착했을 무렵 빵가루와 고추냉이를 사 오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40분 거리를 걸어오느라 허기도 지고 땀도 났지만 나는 별다른 말 없이 집 근처 마트로 향했다. 문제는 빵가루였다. 소, 중, 대 사이즈로 나란히 진열되어있는 빵가루. 작은 걸 사자니 부족할 것 같고 큰 걸 사자니 남을 것만 같았다. 마음대로 사서 가는 것보단 물어보고 사는 게 나을 거 같아 나는 그 즉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엄마는 통화 중이었다. 금방 끊을 것 같은 마음에 나는 그 이후로 두 세 번을 더 걸었고, 심지어는 카카오톡 보이스톡까지 시도해봤지만, 엄마는 전화를 끊을 생각이 일체 없어 보였다. 나는 결국 엄마를 대신하여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돌아가면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다들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 받지를 않았다.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거니 엄마는 그때까지도 통화 중이었다. 진열대 앞에 쭈그려 앉아 시간을 보내자니 나는 짜증이 조금씩 치밀어올랐다. 그때 다행히도 아빠에게 건 두 번째 전화가 겨우 연결이 되었다. 아빠는 그냥 큰 걸 사 오라고 하셨다. 한 명의 의견보단 두 명의 의견의 힘이 강력하기에 나는 아빠의 대답을 듣고 그제야 망설이 없이 빵가루 대자를 골라 고추냉이와 함께 계산을 마쳤다.

집에 도착하자 엄마는 그때까지도 통화 중이었다. 나는 여태 통화 중인 엄마에게 다소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심부름을 시켜놓고 왜 전화를 안 받냐고 말했다. 엄마는 그제야 긴 전화를 끊더니 나를 보고선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빵가루를 왜 이렇게 큰 걸 사 왔냐고 소리쳤다. 나는 여태껏 전화를 안 받은 건 엄마면서 왜 짜증을 내냐고, 풀기 힘든 신발 끈을 마저 풀며 그냥 큰 걸 쓰라고 했다. 그러자 엄마는 빵가루를 작은 사이즈로 바꾸지 않으면 당장 하늘이라도 무너질 사람처럼 길길이 날뛰며 나에게 다시 마트에 가서 바꿔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런 엄마의 태도에 반발심이 생겨 바꿔올 거면 엄마가 바꿔오라고 대꾸했다.

엄마는 소파에 널려있는 옷가지를 주섬주섬 입는 듯하더니 그때부터 온갖 비난 섞인 욕을 나에게 퍼붓기 시작했다. "멍청한 년", "너는 쓸모가 어째 하나도 없니",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뭐니" 등등. 나는 빵가루 하나 잘못 사 온 거 가지고 그런 욕을 들어야 하는 게 참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기관차처럼 계속 날뛰기 시작했고, 참다못한 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그냥 아무것도 만들지 말라고 했다. 그러고선 엄마가 들고 있는 빵가루를 들어 냅다 바닥에 던졌다.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빵가루는 급기야 귀퉁이 한쪽이 터지고 말았다. 그런데 엄마는 도저히 성질이 풀리지 않는지 너 때문에 바꾸지도 못한다면서 터진 빵가루 봉지를 그대로 집어 들어 내 책상 위에 내리꽂아버렸다. 하얀 빵가루는 금세 내 책상 위를 수놓았다. 나는 그게 감히 우리 싸움의 대미를 장식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윽고 엄마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찾아들고 와 조용히 내 책상 위와 바닥을 쓸어내었다. 가열된 감정은 천천히 식어가고, 싸움은 일정의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엄마가 가난해서 그래. 돈 몇 푼 아끼려다 보니까 그렇게 짜증을 내게 되는 거야." 엄마는 자신의 미성숙한 분노에 합리화를 하려고, 내 죄책감에 무게를 더하려고 그런 말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 말은 나로서는 하나도 공감이 되지 않는 말일뿐더러 원만한 이해도 하기가 힘든 궤변에 불과했다. 빵가루 하나가 만 원이 넘어가는 가격이라도 했을까 하면 아마 나는 엄마의 그런 말에 조금은 수긍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5천 원이 조금 넘는 가격의 빵가루에 기껏 심부름을 해온 딸에게 여과 없이 욕설을 퍼부으며, 마구 질책을 하는 행동은 내 상식선으론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도저히 이해를 ‘하지 못하는’ 행동임에 틀림이 없었다.

위궤양으로 벌겋게 출혈된 위내시경 사진을 보면서도 "네가 스트레스 받을 일이 뭐가 있니?"라고 나를 다그쳤던 엄마. 그런 엄마에게 나는 가끔 내가 엄마에게 너무 많은 걸 원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 혼자서도 좀 더 강해지고 단단해져야겠자고 다짐하는 일이다. 어제 낮만 하더라도 삶에서 서로 무서움을 느꼈던 순간들을 이야기하며 요즘 같으면 엄마와 잘 지낼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엄마는 참 나에게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라는 걸 다시금 느낀다. 나 홀로 서있는 이 길이 퍽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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