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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igma Mar 22. 2019

프로포즈를 고민하고 있다면

백발이 되어서도 자랑하고 싶은 프로포즈 이야기





제주도에서의 밤이었다. 자정이 지나면 28번째 내 생일을 맞이하게 되는 셈이었다.


3개월이라는 데드라인의 결혼 프로젝트에 지쳐갈 때쯤, 서로에게만 집중하며 휴식하자고 훌쩍 제주도로 떠나왔다. 오랜만에 둘이서만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며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심지어 내 생일까지 보내게 되다니... 이 얼마나 로맨틱한 타이밍인가!


역시는 항상 역시나다. 똑똑한 신랑은 그 타이밍을 놓칠 사람이 아니었다. 타이밍이 좋아도 너무 좋은 시기적절한 프로포즈를 준비했던 것이다. 결혼반지를 맞춘 샵에서 반지와 너무 잘 어울리는 예쁜 목걸이를 준비했다. 그리고 신랑의 손으로 한 땀 한 땀 만든 가죽 성경책을 함께 받았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내 성경책이 어디 갔나 했다. (성경책이 어딨는지도 모를 만큼 자주 안 봤다는 말로도 대체된다ㅠㅜ) 주일예배를 마치고 신랑 차에 두고 내렸나 했었는데, 신랑이 그걸 가지고 가죽공방을 찾아갔던 거였다.  20살이 되던 해에 처음 내 돈으로 산 성경책이었다. 나름 열심히 읽으며 들고 다녔는지 매우 낡아서 들기만 해도 가죽이 후드득 떨어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내 손때와 지난날의 추억과 기도, 간절함이 묻어있다 여겼기에 쉽사리 새 성경책을 살 수가 없었다. 그걸 알았던 신랑이 성경책 커버 가죽을 바꿔주고자 퇴근 후 밤마다 가죽공방을 찾아가 가죽공예를 했던 것이다.


"... 다은이의 소중한 행복과 추억이 담긴 성경책을 평생 간직할 수 있게 준비했어. 세월의 흔적에 따라 변하는 가죽과 언제나 빛을 잃지 않을 황동 단추, 그리고 세월의 흔적에 따라 늙어갈 나와 언제나 빛을 잃지 않을 나의 마음 모두 평생 한결같이 너 옆에 있을 거야..." 


어떤 여자가 이런 선물에 감동받지 않을 수 있을까... 평소 잘 울지 않는 나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배우 유인나 씨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여자들이 남자친구가 사 온 꽃다발을 좋아하는 이유는 꽃이 좋아서라기 보단 쭈뼛쭈뼛 꽃집에 가서 꽃을 고르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그걸 들고 날 만나러 온 시간 때문이라고... 나 역시 마찬가지 었다. 퇴근 후 밤마다 들키지 않으려 자는 척을 해가며 가죽을 꿰매고, 함께 갔던 백화점에 혼자 찾아가 여자 목걸이를 고르며 프로포즈라는 것을 하기 위해 긴장했을 그 시간이 내게 너무 큰 감동이었다.


사실 이미 우린 결혼을 하기로 했고, 결혼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이벤트로 프로포즈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결혼을 안 할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사랑이란 게, 연애라는 게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되지만 더욱이 해서 상대방을 감동시키고 행복하게 하려 하는 것...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생일이었다.





프로포즈 Tip

이벤트라는 건 촛불이나 폭죽 혹은 화려한 레스토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늘 가던 집 앞 카페에서 진심을 담아 쓴 손편지와 진정성만 있다면 가능한 게 프로포즈라 생각한다. 프로포즈를 Big event가 아닌 Deep event다. 그 혹은 그녀에 대해 깊이 생각할수록 자연스럽게 프로포즈는 성공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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