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고
‘과학을 쿠키처럼!’이라는 모토의 유튜브 채널이 있다. 6개월전에 시작한 방송이다. 채널 소개글에 우리에겐 낯선 ‘과학 커뮤니케이터’란 말이 적혀있다. 유럽에는 교수나 연구자와 달리 대중에게 과학지식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과학쿠키가 이 과학 커뮤니케이터를 꿈꾸는 프로그램이다. 최근에 그 어렵다는 양자역학을 세차례에 걸쳐 다루기도 했다. 유튜브에 과학채널이 여럿 있지만 이만큼 친근하고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곳은 없는 것 같다.
양자역학편은 리처드 파인만의 유명한 말로 마무리한다. ‘인류가 멸망했을 때 다음 시대의 인간에게 단 하나의 지식을 남길 수 있다면 무엇을 전할 것인가’. 세상의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있다는 문장이 그 대답이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원자에서 시작한다. 빅뱅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한 점의 폭발에서 시작되었다. 한점이 광대한 우주가 되기까지 최초의 순간에 입자단위의 물리학, 양자역학의 세계가 펼쳐진다. 우주의 일부인 지구와 생명체들, 즉 우리의 세계도 원자가 없이 설명할 수 없다.
처음에는 우주와 원자에서 시작하는 빅히스토리에 대한 내용이라고 예상했다. 우주의 기원에서 시작해 은하의 형성, 태양계와 지구의 탄생, 생명의 시작과 진화, 인간의 역사로 이어지는 이야기 말이다. 사실 빅히스토리는 포스의 다음 모임의 책이다. ‘거의 모든 역사’는 과학사에 가깝다. 우주의 기원 챕터에서는 천문학과 물리학이었다가, 어느새 지구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연구하는 지질학으로 넘어간다. 생물학과 기후학, 해양학, 분자생물학, 인류학, 화학, 분류학, 유전학이 시작된 계기와 과학자들의 고군분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두껍지만 읽기 어려운 책은 아니다. 심지어 교사인 지인에게 자기 반 초등학생이 읽는 걸 봤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지루해질 수 있는 과학의 원리를 건너뛰지 않으면서도 읽기를 포기하지 않게끔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과학이 인간의 상식과 직관과 너무 멀어진 건 맞다. 하지만 그 문제의식은 평범한 질문에서 시작되고, 우리도 떠올릴만한 연구방법에서 출발했다. 지구의 크기를 재기 위해 험한 지형을 헤쳐가며 남미에서 고생한 프랑스의 과학자들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윈은 위대한 면모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오랜시간동안 공격받을 것을 우려해 결과를 발표하지 않다가 지인이 같은 이론을 발표하려하자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힌 인간적인 면도 보여준다.
방대한 과학사를 다루는 각 챕터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학문분야다. 그래서 챕터를 넘길 때마다 책이 한권씩 생각났다. 우주의 역사는 ‘빅뱅의 메아리’, 진화론은 ‘진화,공생,멸종’, 물리학은 ‘세상을 바꾼 물리’, 유전학은 ‘크리스퍼 혁명’과 매칭되었다.
‘거의 모든 역사’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 중의 하나는 생각보다 훨씬 인류는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인 것 같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인간이 지구를 정복했고 다양한 학문은 놀라운 수준으로 발달해서 미지의 영역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알면 알아갈수록 땅과 바다의 깊은 곳, 생명의 원리, 인류의 기원, 생물의 종류, 기후의 변화와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단락에 공감하게 된다. 인간은 겸손해야 하고 알아야할 것이 많기 때문에 우리를 지속시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제이 굴드는 이렇게 말한다. 생명체가 태어날 때로 시간을 되돌린다면 지금과 같은 세상이 다시 출현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말이다. 그러기에 너무 많은 우연이 작용해서 인간의 탄생은 행운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정도다. 지능을 가진 인간은 특별한 존재라고 믿고 싶지만, 그냥 우연히 생겨난 걸수도 있다. 그래서 더 소중한 게 아닐까. 그리고 이건 인간 뿐 아니라 같은 지구에 살아가는 생명체들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