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

진화심리학에 관한 이야기

전중환 '오래된 연장통'

by cell

트레바리 포스에서 신시아 브라운의 '빅 히스토리'를 읽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시선을 끄는 학문적 관점이 돋보이기보다는 여러 책들을 합쳐놓은 인상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그래서, '코스모스'+'총 균 쇠'+'사피엔스' 아니냐는 우스개도 나왔었다. 클럽장님 의견은 책의 출발이 어디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빅뱅에서 시작하는 것은 역사를 물질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이다. 인간 역시 물질에서 시작되어 생겨난 생명체, 하나의 종의 관점에서 본다. 마치 우리가 사자나 새를 관찰하듯, 외계인이 인류를 관찰한다면 어떨까. 인류를 생물로 본다면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 기존에는 간과되었던 지구의 온도 변화, 전염병, 대륙의 형태, 키울 수 있는 가축의 종류 등이 다양한 인종이 다른 역사의 길을 걷는데 영향을 미친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동을 이끌어내는 마음의 정체는 무엇인가. 인간의 마음에 작용하는 것은 도덕, 문화, 본능, 신념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빅 히스토리에서 처럼 생명체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진화심리학인 것 같다. 사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1년 동안 트레바리 클럽 GD에서 읽었던 책들과 수많은 얘기들의 전제는 우리가 자연스럽게 여기는 여성과 남성의 차이의 많은 부분이 만들어진 것이고 변화 가능하다는 것이다. 차이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때로는 차이를 이유로 차별받고, 때로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차별한다. 진화심리학의 기본 전제는 여성과 남성은 다르며 이는 과학적인 사실이라는 것이다.


중간중간 집어던지고 싶었지만, 전부 읽은 뒤에 두 권의 책을 찾아보았다.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와 '연애'다. 앞의 책은 부제가 진화심리학이 만들어내는 젠더 불평등이고, 뒤의 책은 성선택 이론으로 유명한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의 책이다. 두 권의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오래된 연장통'을 읽으니 마음에 여유를 갖고 바라볼 수 있었다.


책의 장점은 쉽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진화심리학의 폭넓은 주제들을 소개한다. 데이비드 버스, 로버트 라이트, 로널드 피셔, 제프리 밀러를 비롯해 앞으로 우리가 접하기 어려운 학자들의 연구들이 어떤 설명을 하는지 간략하게 알려준다. 진화심리학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잘 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숙명적인 것이겠지만 이런 류의 책은 반대로 읽으면서 이게 진짜야? 허술한 거 아니야? 깊이가 없어 보이는 데라는 인상을 받기 마련이다. '연애'를 읽으며 학문이 학문인만큼 가볍게 비판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을 진화하는 생명체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신선하고 흥미로운 접근방법이다. 진화심리학이 비판받는 지점인 반증 불가능성도 무슨 말인지 알겠다. 책을 읽고 있으면 A의 원인은 B이다 라고 했다가 A가 아닌 현상이 나타날 때는 B가 원인이지만, 문화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보이고 반대되는 사례도 나타날 수 있다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은 할 말이 없어진다. A이든 not A이든 B가 원인이라는 명제는 항상 참이다. 문화와의 관계를 같이 다루거나, 이미 진행되고 있지만 유전학을 근거로 한 설명이 있으면 읽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직관은 추론에 우선한다고, 책의 곳곳에서 쓰는 용어나 관점이 불편하면 암이나 에이즈도 원인을 알아야 치유할 수 있는 것처럼 성차를 과학적으로 알고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신뢰를 보내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과학은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학문이다. 가설에는 연구자의 관점이 들어간다. 다른 과학에서 양적인 방법을 사용해 가설을 검증하는 반면, 진화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연구방법은 질적인 연구방법도 활용한다. 질적인 연구방법은 연구자의 해석이 들어간다.


진화심리학이 성차별적이라고 비판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자의 젠더 고정관념 때문인지, 아니면 인간의 현재 행동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는 시각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또는 생존과 번식을 목적으로 하는 진화의 원리로 설명하기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진화심리학도 있을까? 예를 들면 보노보처럼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에는 암컷이 섹스에 적극적이므로, 여성의 성욕을 부정하는 문화는 인위적이라는 식의 설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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