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

나무, 과학, 삶 그리고 랩걸

호프자런의 랩걸을 읽고

by cell

랩걸은 2017년 미국 베스트셀러이기도 하고, 최근 책모임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호평을 접했던 책이다. 마침 서대문자연사 박물관에서 이 책을 주제로 과학강연이 열리기도 했다.


한국천문학연구원의 황정아님은 강연에서 책의 장르를 뭐라해야할지 애매하다고 했다. 읽어본 즉슨 나무 그리고 작가의 이야기가 마치 두개의 덩굴이 얽힌 것처럼 펼쳐지는데, 때로는 교양과학서적으로 때로는 자서전으로 읽히는 책이었다.


책에서는 누구나 기억에 남는 나무 한그루가 있을 거라고 한다. 내게는 그말이 맞다. 어린 시절 여름방학이면 놀러가던 시골에는 커다란 버드나무가 있었다. 개울 옆에 서서 뙤약볕을 가려주는,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행복했던 시간과 함께 추억으로 남아있다.


사실 버드나무가 개울 근처에 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버드나무는 1,2km 거리를 두고 쌍둥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같은 유전자를 가진 나무가 발견되기도 한다. 번식이 물에 수만개의 가지를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연히 적당한 환경을 갖춘 장소에 멈추게 되면 뿌리가 나고 성장하기 시작한다.

나무의 삶은 우리에게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그저 배경을 이루는 한 부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그루의 나무 뒤에는 온도와 습도를 재가며 몇년이고 흙속에서 기다리는 수만개의 씨앗들이 있다. 기회를 잡은 씨앗이 뿌리를 내리는 것은 목숨을 건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자라나는 나무는 숲에서 생존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나무의 잎사귀 크기를 보면 위로 갈수록 작아지는 걸 볼 수 있다. 이는 햇빛을 받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한 결과다. 위에 있는 잎사귀는 바람에 흔들리기 쉽고, 흔들리는 틈으로 땅에 가까운 잎이 빛을 받을 수 있다.


오로지 재능과 노력 그리고 곁에 있는 동료를 믿으며 기다림이 미덕인 과학자의 삶이 여기에 겹쳐진다. 고향을 떠나 대학에 장착한 랩걸은 첫 관측결과를 보며 처음으로 과학자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마치 식물이 온갖 위기를 극복하고 첫 이파리를 냄으로서 비로소 진정한 삶을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서대문 자연사박물관에서의 과학강연은 젠더와 과학을 주제로 이루어졌다. 과학계의 유리천장을 다양한 통계 수치들로 보여준다. 14%. 이 숫자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과 학부생에서 여성은 50%이지만 연구원의 비율은 14%로 떨어진다. 사실 발표자료도 자료지만 강연하는 분의 표정과 뉘앙스, 짧은 한숨에서 더 어려운 현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원하는 것은 하나. 노력에 대한 공정한 보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척박한 과학계에서 개인의 커다란 보상보다는 나와 함께 연구하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 누군가의 롤모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랩걸에는 성별을 이유로 겪는 어려움이 툭툭 던지듯이 묘사되곤 한다. 호프자런은 자신이 재능을 꽃피울 기회가 없었던 여성조상들의 기대를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들이 인용하는 책의 유명한 구절은 과학자의 태도이면서 동시에 더 나은 세상을 바라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한 것 같다.


‘... 그 대신 우리의 목표는 세차게 흐르는 강물로 그가 던진 돌을 내가 딛고 서서 몸을 굽혀 바닥에서 또 하나의 돌을 집어서 좀더 멀리 던지고, 그 돌이 징검다리가 되어 신의 섭리에 의해 나와 인연이 있는 누군가가 내딛을 다음 발자국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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