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오후에 집에 들어서면 기시감이 들 때가 있다. 매번 접하는 집안의 모습과 주변의 소음, 냄새지만 왠지 전생에서 지금 이 순간과 똑같은 경험을 했다고 느끼는 것이다. 데자뷰는 낯선 곳을 갔을 때 이미 가보았던 것처럼 느껴지는 걸 말하지만, 나는 종종 집에서 그런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데자뷰 겪으면 애틋하면서 아련한 기분이 든다. 예전의 생이 정말 있어서 반복되는 것 아닌가 상상하기도 하고 말이다. 이 감각의 정체는 뭘까?
'더브레인'은 데자뷰를 뇌가 경험을 저장하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뇌가 기억을 만들 때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여 저장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뇌에 이미 있는 비슷한 기억 또는 내부모형을 불러내 차이점을 비교하고 덧붙여 저장한다. 그렇게 보자면 데자뷰는 그리 놀라운 현상은 아니다. 원래 뇌가 약간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기억을 혼동하는 것이다.
이번에 트레바리에서 읽은 책은 '뇌속에 또다른 뇌가 있다'다. 여기에 몇년전 BBC의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만든 '더브레인'과 진화심리학 책 '행복의 기원'을 같이 읽었다.
책들의 소감을 말하자면 '더브레인'이 목차가 체계적이어서 잘 읽혔다. 뇌에서 벌어지는 물리, 화학반응에 대한 설명도 좋았다. '뇌속에..'는 친근한 방식의 글이긴 하나 어려운 생물학 지식을 피하고자 해서인지, 행동심리학책에 가까웠다. '행복의 기원'은 인간을 행복이라는 쾌감회로에 반응하는 동물로 보는 관점인데, 참신하지만 몇몇 설명들에서 진화심리학 특유의 보수적 시각이 보이기도 했다.
뇌를 설명하기 위한 키워드를 뽑는다면 다음과 같다. 가소성, 내부모형, 사회성, 보상, 무의식, 몸과의 상호작용, 신호의 원천은 중요하지 않는다는 것.
몇개만 설명하자면, 가소성은 흙반죽을 떠올리면 된다. 도자기는 단단해서 모양을 바꿀 수 없는 반면, 흙반죽은 어떻게 주무르냐에 따라 모양이 바뀌고, 바뀐 모양이 유지된다. 뇌는 유연해서 태어날 때는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문화와 환경에 적응하여 특정 형태를 띄게 된다.
내부모형은 인간이 인식할 때, 인식의 틀과 감각이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뇌의 신경회로를 관찰해보면 감각보다 인식의 틀이 더 영향이 크다. 예를 들자면 인간은 길을 걸으며 거리의 내부모형을 불러낸다. 여기에 시각과 청각등의 감각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주변 풍경을 인식한다.
뇌는 사회적이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관찰하고 내면화하는 데 틱월한 능력을 가졌다. 공감능력 뛰어나 주변의 고통을 보면 의지와 상관없이 고통을 느끼는 부분이 활성화된다. 뇌의 상호작용은 필수적이어서, 고립될 때 느끼는 통증은 폭력이 유발하는 그것과 반응하는 뇌의 부위가 같다. 우리의 뇌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비유적인 표현만은 아닌 것이다.
클럽장님의 설명에 의하면 뇌과학은 역사가 짧은 편이다. 물리학에 비유하면 티코 브라헤 단계다. 티코 브라헤는 처음으로 별의 운동에 관한 방대한 데이터를 모은 학자다. 이 자료를 기반으로 케플러가 별의 운동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고, 뉴턴에 이르러 만물의 법칙이 완성된다. 뇌과학은 이제 시작단계라는 말이고, 뇌가 물리세계처럼 법칙같은 게 있어서 뉴턴이 나타날지는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뇌에 관해 과학자들이 현재 합의하는 수준이 앞에서 언급한 키워드들이다. 뇌과학에서 더 나아간 결론을 도출하는 이론이나, 진화심리학의 관점들은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고 한다. 특히 여성, 남성의 심리와 행동에 관한 주제만 나오면 손사레 치는 학자들도 있다고 한다. 연구방법이나 결론이 가진 함의 때문일 수 도 있겠지만, 이 새로운 분야를 대하는 겸손함이 아닌가 싶다.
몇일 전 회사 팀사람과 점심을 먹을 때다. 나는 본적이 없는 TV 프로그램 얘기를 하면서 다들 시끌벅적하게 웃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도 못하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이해하는 척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리석거나 지조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런 게 뇌의 속성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다른 학문이 세계를 이해하는 학문이라면, 뇌는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뇌는 속이기 쉽고 믿을 수도 없는 것이다. 독립된 개인, 확고한 자아, 합리적 이성이라고 생각해왔던 인간의 특징들이 사실 우리는 더 허술하고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세상을 인식하는지, 뇌는 변화할 수 있는지, 의식은 어떻게 생겨나는지, 의식과 몸의 관계를 얼마나 밀접한지 우리가 가져온 오랜 질문들을 주제로 한 과학이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