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소원 판례 2010헌바402를 읽고
전세계가 연결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일까. 낙태문제도 글로벌한 흐름이 확인된다. 최근에는 아르헨티나에서 낙태 합법화 지지 시위가 있었다. 하원의원에서는 합법화안이 통과되었다고 한다. 가톨릭이 국교고 낙태에 가장 보수적인 아일랜드에서는 국민투표에 붙여졌다. 아일랜드는 낙태가 불법이었기 때문에 임신을 중단하기 위해서는 인근 국가의 의료기관을 찾아야만 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의 검은시위에도 영향을 준 것이 폴란드다. 종교계가 촉발시킨 낙태금지법 강화 시도에 검은 옷을 입고 시위에 나섰다. 한국에서도 여성운동에 힘입어 낙태죄 위헌판결을 위한 노력이 진행중이다.
봄을 판다는 의미의 매춘이 시간이 흐르면서 성을 사는 사람을 부각시키기 위한 매매춘이라는 용어로 바뀌고, 다시 봄을 은유하는 '춘' 대신 성매매라는 단어로 정착되었다. 어떤 논의를 할 때 사용하는 단어를 바꾸는 건, 단어 자체가 이미 가치판단을 포함하고 있어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낙태라는 용어도 마찬가지다 태아를 떨어뜨린다는 것은 태아의 생명을 함부로 다룬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태아를 떨어뜨린다고 하면 찬성할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그래서 여성의 자기결정권 측면의 시각을 반영해 임신중절, 임신중단권등의 용어를 쓰기도 한다. 다만, 현재 이슈의 중심이 낙태죄 위헌이므로 독후감에서는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게 혼란을 덜 줄 것 같다.
판결문에는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성'이라는 말이 나온다. 왠지 정확히 이해한 건 아닐 것 같지만, 기본권을 제한하는데 다른 방안이 없이 이것이 최선인가. 권리를 제한함으로써 보호하고자하는 공익이 더 큰가의 질문인 것 같다. 투박하게 얘기하자면 그래서 법이 현실에서 여러 권리를 보호하는데 실질적으로 균형있게 작용하는가라는 의미인 것 같다. 해외의 통계에서 낙태 합법화와 임신중절률의 증가는 상관관계가 확인된 바가 없다. 합법화된 네덜란드의 예를 많이 든다. 판결문의 반대의견에서 나오듯이 불법화하는 형법은 현실적으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음지화된 시술로 인해 비용이 증가하고 안전하지 못한 낙태로 인해 산모의 생명이 위협받는다. 루마니아는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낙태의 전면적인 금지는 여성과 태아 모두에게 참혹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오히려 임신중절률을 낮추는 건 피임교육과 미혼모 지원, 육아지원이 효과적이다. 그래서 판결문의 합헌의견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문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VS 태아의 생명권을 어떤 권리가 더 중요하냐는 것으로 보았을 때다. 낙태법 존치를 주장하는 입장의 대표적인 근거이기도 하다. 헌법판결문에도 모순은 있다. 합헌 논리에 따르면 모든 태아의 생명은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다. 그러나, 모자보건법은 반대로 낙태를 허용하는 다섯가지 조항을 두고 있다. 생명이 절대적 기본권이라면, 유전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태아는 왜 예외인가. 착상하는 순간 보호받아야할 권리가 생긴다는 근거와 배치되는 주장이다. 오히려 잘 낳도록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보호받아야할 생명의 기준도 명확하지 못하다. 인간으로 자라날 가능성이 생명권의 기준이라면 착상하기 전의 수정란은 왜 생명이 아닐까. 판결문 반대의견에 나와있듯이 생명의 발생과정은 연속적이고, 결국 인위적으로 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단계인지는 사회의 합의에 의한 것이지, 생명의 절대가치에 호소하는 것이 근거가 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생명권 논의도 의미있지만, 추상적인 논의에서 그쳐 현실을 방관하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왜냐하면 생명권보다 자기결정권이 중요해라고 무자르듯 정하기에는 자기결정권이란 단어에 수많은 삶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불법임에도 2005년 기준 한해 낙태건수가 35만건이라는 보건복지부의 조사가 있었다. 범죄에 의한 피해, 미혼모, 산모의 연령, 경제적 이유 등으로 불법임에도 절박한 이유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낙태는 성별화된 몸의 문제이기 때문에 남성이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기가 어려운 문제다. 임신이 주는 몸의 변화와 출산이 가져오는 위험은 건강과 생명에 직결된다. 임신기간동안의 경력단절과 사회적으로 부여되는 육아에 대한 책임은 인생 자체에 변화를 가져온다. 여성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임신은 큰 변수다. 그게 바로 지금 낙태 합법화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