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단상
별의 가드닝
거먼 창에 홍콩야자 고무나무 있다
백단향 연기 새파란 벽지 위 화양연화 포스터 말라비틀어진 스투키
제 발등을 리볼버로 쏜 미친 시인이 좋아했다던 금가루 보드카
빨간 벨벳 커튼 호텔 코스테의 바이닐이 빙글빙글 돈다
네가 꽃을 피운다면 읽지 않은 책들 가득 쌓인 창가를 내어줄게
빨간 립을 발라야 글이 잘 써진다는 너의 말이 아직도 선명하다
휴지에 뻐끔뻐끔 닦아낸 입술 귀퉁이를 잘라 넣어둔 어항에서 커다란 꼬리며 지느러미 생겨났다. 머잖아 곰팡이 피고 다리부터 문드러져 손닿지 않아 시들어갈 천장의 스타테리아(Starterior)
플라네타륨이 별보다 좋아 가짜긴 해도 가까이 있으니까 그래도 야광별은 사지 말자 꺾은 꽃도. 명백히 시들어가는 것엔 괴로움뿐이다 눅눅한 담요 걸치고 죽은 별 어루만지는 새벽의 다짐
숨을 쉬지 않는 너의 코에 손가락을 댄다 깨기 직전에 꾼 꿈은 무거워 온종일 울렁이다가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아침에 죽은 듯 잠든다
대적반처럼 남았는 화상흔 지우려면 어떤 나무 심어야 해
분재 옆에 자라난 회색 버섯 장난감 방울토마토도 좋아
베면 손가락 똑 잘린다던 녹나무의 상처는 흘러나온 수액으로 메워진단다
병원 건물에 달라붙어 앓는 소리 하는 네온이 꺼지면 그때부터 지글대는 대로변 울상인 사람들 오물투성이
중요한 건 얇은 껍데기 안에 들었다는 허망한 농담엔 토하는 술과 음식만이 아니라 체한 마음도 있다
죽을 용기를 채점하는 손가락 마천루의 인광燐光 나직한 안개 여름밤이면 자판기 밑에서 꺼먼 눕시를 입고 기어 나오는 무뢰배들
휘갈겨 쓴 메모 : 최선을 다해 살았으니 오래 슬퍼하지 마
집 바닥에 침 뱉고 쥐나 고양이 들개 들이고서 나중에는 온갖 가축까지 들이겠다
하기야 인간도 들이는데 옷장 틈에 연민만 끼워 넣지 않는다면야
저 문은 무서워서 열 수가 없었어 누가 들어와 있으면 어떡해
그렇다고 방 하나인 집은 너무 쓸쓸해 짓눌려 터져버릴 거 같거든
지긋지긋한 습기와 먼지 낯익은 벌레들이 들끓는 골목 앞 짚엔 고독사로 죽은 아저씨가 밤낮으로 창문을 열고 자기 흔적을 지운다
부서진 새시 콘크리트 분진 술 냄새
방안은 토해낸 별들로 가득해 슬픔이 깊다
발바닥 타고 오르는 한기 쭈뼛 선 머리에 뻗은 빛기둥
이 별 이름 뭐라고 했더라 목성은 아닌데
여긴 얼음을 감싼 차가운 대기만 있고 땅이 없어
짝 - 손뼉 칠 때마다 언 숨이 부서져 피어나는 페트병 속 보랏빛 오로라
이대로 가라앉아 바닥이 하늘 되거든 모래알이나 조개껍데기 부유하는 노무라입깃해파리 납 달린 생선 입과 침묵도 진실이야
냉랭함을 배울 수 없으니 다정을 택한 게 항성의 정체라는 거 아무 다짐 없이도 차가울 수 있는 돌덩이나 뱉는 말이지
저건 죽고픈 충동과 평생 싸워야 하는 숙명의 천칭자리 먼 길이니 짐을 단단히 챙겨 서울고속버스터미널로 가자.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떠날 거야 죽고 싶단 말과 보고 싶단 말 반반으로 이뤄진 아침에 살자
비가 가득 찬 방안 익사 직전에야 천장에 별들 더듬을 수 있다
손끝에 검댕 별의 뭉근한 열기 살갗이 익는다 거봐 마침내 목성에는 마음이 있어
아무르 일그러진 벽지 거먼 곰팡이 전기 테이프로 막아둔 신문구멍 접시만이 가득한 싱크대 환풍기 없는 스토브 뚜 뼘 짜리 미닫이창 체셔 고양이 쪽빛 썬더버드 델마와 루이스 프리즈프레임 페이드아웃 검정 화면 건너 알몸인 나
글 - 별의가드닝
그림 - 별빛수영장
231128 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