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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막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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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흐름 Oct 10. 2022

뻐꾸기 할아버지와 층간소음



울 동네에 뻐꾸기 소리를 흉내내는 할아버지가 있다. 처음엔 불쾌했다. 사람이 눈에 띄면 뒤에서, 옆에서 뻐꾹 뻐꾹. 희롱하는 것 같기도 하고. 관심이 필요하신가?


그러다 어느 고요한 오후에 할아버지 뻐꾸기 소리를 듣는데, 어찌나 뻐꾸기 같은지 '진짜 뻐꾸기가 들으면 친군 줄 알겠네' 했다.

감탄.

마치 할아버지가 뻐꾸기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산속에서 뻐꾸기 소리 들었던 추억이 촤악 떠오르고 그때의 산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와아.

이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에 뻐꾸기 인간이 있으니, 이곳이 산이요 숲이지 뭐야. 자연이 할아버지 소리 닿는 곳에 소환되고 있었다. 우리가 잊고 사는 자연이.

뻐꾸기의 영혼을 가진 자, 그 자연을 닮은 자가 내 있는 자리에서 나를 자연 가운데로 불러들이고 있었다.


내가 말했던가. 어제 나는 비명을 질렀다고.

"그만 뛰어. 그만!"

위층 사람들에게 향하는 분노의 외침이었다.

요새 그 집에 사촌 아이가 놀러 와 있다는데. 평소 그 집 아이 하나 뛸 때는 그럭저럭 넘길만했지만 둘이 뛰니 미칠 노릇이 됐다. 전날 밤부터 새벽 2시까지, 아침은 10시부터 해서 오후 3시를 넘기고 있었다. 물론 전날 오후에도 뛰었더랬다. 물론 컴플레인도 이미 해놓은 터였다.

글을 쓰는 지금도 천장은 널을 뛰고 있다.


내가 널을 뛰어 본 지가 언제였지? 어릴 적 놀이터 시소에 올라서서 친구와 함께 널을 뛰지 않았었나? 친한 친구랑 한 그네에 함께 서서 마주 보고 그네도 타곤 했었는데.

재밌었어, 참 재밌었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놀이터에 가 있다.

어디 놀이터에서만 그렇게 놀았게. 집도 놀이터지.

나도 위층 아이들처럼 집을 놀이터 삼았더랬지.

즐거웠어, 참 즐거웠어.

깔깔 웃고 데굴데굴 굴렀댔어.


도대체 언제부터 벽을 세웠을까. 콘크리트 터에선 함부로 뛰면 안 된다. 콘크리트 숲에선 함부로 이상한 소리 내면 안된다, 하고.


위층 짜식들아!

에라이, 그냥 뛰놀아라. 집도 놀이터가 된다는 걸, 놀이의 기쁨을 다시 상기시켜 주었으니, 좋아.

내 천장 위로 반짝반짝 놀이의 스피릿을 뿌려다오. 이 뛰놀 기운, 뛰놀 거리 없는 육신에게 말이야.

뛰어라. 잘한다.

그리고 고맙다, 아이들아.

고맙습니다, 뻐꾸기 할아버지.


콘크리트도 뚫고 자연과 놀이터를 소환하는 영혼들과 이웃하여 사니, 이 동네 참으로 복된 동네도다.

얼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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