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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흐름 Sep 03. 2023

부인한테 잘하시오, 아브람

[성경] 창세기 12장 10절~20절




성경의 창세기 12장을 읽는다.

신이 아브람을 통해 '제대로 된 신의 민족'을 꾸리고자 아브람을 큰 땅으로 이동시키는 중이다. 때는 사람들의 부패가 다시 만연하고 있었던지라 신의 편에 서는 의로운 민족을 꾸려 그들로 하여금 세상을 정화하려는 신의 의로운 계획이 있었다. 결국은 세상을 다시 신에게 축복받는 땅으로 회복시키려는,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 회복'의 임무를 지고 아브람이 나아간다.

12장 10절에서 아브람의 무리가 네게브로 가는 도중 기근을 만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때 아브람이 기근을 피할 요량으로 이집트로 잠시 경로를 바꾸어 살아볼 생각을 하는데, 혹시나 이방땅에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까 꾀를 낸다. 자신의 부인 '사래'를 여동생이라고 속이고는 그의 미모를 앞세워 이집트의 통치자 파라오의 지붕 아래 살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덕으로 많은 재산까지 받게 된다.

물론 신이 그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지 않는다. 사래로 인해 파라오와 그 가정에 역병이 돌게하고 파라오가 아브람과 사래의 진실을 알게 하여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토해내도록 하신다. 파라오의 사람들이 아브람 무리를 그들 소유 재물과 함께 내보내며 그들이 제 길을 가도록 한다. 아멘.





이번 성경 내용을 읽으며 아브람이 한 민족의 지도자가 되려면 얼마나 준비(훈련)와 성장이 필요한 사람이었는지가 깨달아진다. 신과 상의하지 않고 자신의 꾀로 기근과 생존 문제를 해결하려고 든 점, 경로를 이탈한 점, 더구나 부인을 욕보인 점까지. 하이구, 정말. 자기 마누라가 파라오의 여자가 되도록 두는 위인이라니. 민족의 지도자는커녕 집안의 지도자가 되기에도 한참 글러 보인다.


사래의 입장에서 이집트에서의 경험이 얼마나 치욕스러웠을까. 그래도 남편의 말을 따라 아브람 무리의 목숨을 구했다. 비록 아브람이 그때까지는 아주 모자란 인간이었을지라도 곧 민족을 이끌 사람으로 성장해갈 것이기에, 사래가 한 일은 신과 민족을 위해 한 일이 된다. 신은 그것을 분명히 기억하셨고 훗날에 사래가 그 치욕을 큰 축복으로 돌려받도록 하신다. 아이 낳지 못하는 여자의 몸으로 자식을 갖는 축복, 그리고 남자 이름이 줄줄이 등장하는 성경 초반에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그 존재가 깊이 새겨진다. 현세까지 사래의 이름이 살아 거론되니 얼마나 큰 영광인가. 


이집트에서 신에게 궁디팡팡 격으로 퇴출된 아브람은 정신 차리고 다시 제길로 돌아간다. 재산까지 늘어서 돌아가지만, 사실 그 재산은 결코 명예롭지 못한 것이라 복이라고 보기는 뭣하다. 그리고 파라오가 재물을 들려 보낸 이유도 어찌 보면 역병이 돌게 한 주범이자 부정 타는 사람들이 손댄 것까지 아예 깨끗이 몰아낸 것으로 볼 수 있기에 그 역시 아브람의 운이라고 보기에 뭣하다. 이것이 축복과 운빨의 재물인지 아닌지는 다음 장에서 그것이 아브람에게 좋은 역할 하는지 아닌지를 보면 알 것이다.  


반면에 자다가 매 맞은 격의 파라오는 신에게 그래도 친절한 손으로 쓰였다. 아브람 일행이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하는 손이 된 것이다. 물따귀 한 방 안 때리고 어떤 손해도 물리지 않고 분란 없이 젠틀하게 놓아주니 그 지도자의 태도를 아브람이 배웠을 것이다. 


이번 장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아브람 일대기의 한 과정. 아브람에게 신이 좋은 줄 알면 신이 무서운 줄도 알라는 작은 '정신차렷' 정도. 신과 상의하지 않고 자신의 판단으로 한 치 앞만 보고 자신의 목숨을 우선하고 임무를 이탈하면 곤란하십니다, 아브람. 그는 어디까지나 큰 민족의 지도자가 되어야 하고, 후에 실현될 그 민족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그는 가던 길을 계속 가야만 한다. 자기 혼자와 가족만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현세까지에 이어진 신과 사람 사이의 관계회복에 큰 연결고리 중 하나이기 때문에 가야 한다. 아브람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어 저 훗날 예수라는 신의 아들이 태어나고, 그 아들이 지금 우리 인생을 책임지고 언제나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며 우리를 죄로부터 지키고 신의 품으로 인도하고 있기 때문에 가야 한다. 그리고 오늘에야 성경 펼쳐보는 사람, 또는 미래에 언젠가 성경을 처음으로 펼쳐보고 그제야 그 안에 펼쳐지는 축복을 받을 민족을 위해서 창세기 12장의 아브람은 계속 신의 임무의 길을 가야 한다. 

수천 년 전에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창세기 12장의 사래는 남편의 누이 시늉을 하며 이집트 파라오의 전에 들 것이며, 

수천 년 전에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창세기 12장의 아브람은 파라오에게 쫓겨난 덕에 다시 제 임무 수행의 길에 들 것이다.

신이 그들의 이름과 한 일을 성경이라는 영원한 인간 기록의 책자에 새겼으니 오래도록 그들이 그 일을 반복하게 할 것이다. 성경 펼치는 민족은 언제 어디서든 그들로 하여금 현세까지 뻗치는 신의 축복을 받도록. 

그리고 그들의 이름과 한 일이 언제까지든 영광되도록 할 것이다.

신이 쓰시는 사람의 축복 스케일과 영향력은 그만큼 무한하고 지속적임에.

앞으로도 계속 수고 부탁드립니다, 성경의 인물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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