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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흐름 Sep 08. 2023

때와 정체성

[성경] 창세기 15장



성경 창세기 15장을 읽는다.

아브람이 신에게 하소연을 한다. 신이 자신과 자신의 자손에게 얼마나 좋은 땅과 민족을 주겠다 약속을 한들, 지금 자식 하나 없는 마당에 그 축복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아브람의 부인인 '사래'는 아이 낳지 못한 여인으로 아브람은 그제까지 자식이 없었다. 

그에 신이 아브람의 비전에 나타나 그가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후손들이 하늘의 별만큼 많을 것이라 확언해 주신다. 한편 또 신이 실현시킬 일을 알려주는데, 아브람의 후손들이 이방땅에서 400년을 노예살이 하며 고생하겠으나, 신이 그 이방 나라를 벌하고 아브람의 후손들이 많은 재물과 함께 그곳을 나오게 하겠다 하신다. 덧붙여 실현될 것은,  아브람은 장수하여 평화롭게 조상 곁으로 갈 것이고 그의 후손이 4대째에 이르러 이 땅에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신다. 

그리고 아브람은 주(신)가 친히 나열하며 주겠다 하는 땅과 족속의 이름들을 언약으로 받아 든다. 아멘.




이번 장에서 아브람이 신의 언약을 받는다. 자식에 대한 언약과 주가 실현할 일들에 대한 언약이다. 

신이 하는 언약은 예언이 아니라, 실현이다. 반드시 일어날 일로, 그것을 알고 어떻게 처사를 하느냐는 아브람에게 달려있다. 알고서 그 길을 기꺼이 갈 것인가, 아니면 죽을 똥을 싸면서 갈 것인가. 

'예? 400년 노예살이요? 남의 땅에서 고생하다 4대째에야 우리 땅에 돌아온다고요? 너무한 거 아닙니까?' 인가 아니면,

'신이 우리의 억울함을 해결하신단다. 이방 놈들 재물이며 땅이 결국에는 우리 손에 떨어지는구나. 우리는 신이 구해내는, 신이 아끼는 족속이고 그들은 신의 손에 망할 족속이구나. 그놈들처럼 되면 안 되겠다.'하고 자신의 아이덴터티를 바로 세울 것인가. 

신이 아브람에게 보여주고 들려준 비전은 신이 아브람을 통해 만들어갈 민족의 '정체성' 확립 과정이다. 신이 세우는 민족으로 어떤 이방족속도 감당하지 못하는 신의 의로운 사람들. 


이방족속이란 성경의 신이자 천지창조의 신과는 멀어진 사람들이다. 신의 의를 따르지 않고 그 의로움에서 벗어나 악행 하며 죄짓는 사람들로 이번 장에서 신이 언급하는 '아모리 족속'이 그들 중 하나이다. 본문에 이방민을 향한 신의 심판이 있기 전에, 아모리 족속의 죄가 가득 차는 400년의 기다림이 있다. 그들이 아브람의 자손들을 괴롭히며 죄를 채워갈 모양이다. 그런데 신은 왜 죄를 채워서 벌을 하실까? 아예 싹수를 자르지 않고. 아브람 자손이 가엽지 않은가.

내 소견으로는 끝을 볼 모양인가 보다 한다. 신의 민족이 큰 민족으로 성장하려면 시련의 크기도, 그 훈련과 변화, 이겨냄도 웬만한 민족보다 커야 한다. 만렙 민족이 되는 길이랄까. 그래야 후에 그보다 작은 민족을 품을 수 있고 그들 역시 신의 민족이 되게끔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인도해 줄 수 있다. 나의 시련을 돌아보면 내가 얼마나 강해 질지를 가늠해 볼 수 있고 얼마나 넓게 타인을 품을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시련의 크기만큼 신이 해야 할 일이 크다. 신이 아브람에게 '내(신)가 이방족을 벌주고 너희는 재물 갖고 나오니라'한 말은 '내가 열심히 일할테니 나 믿고 따라오라'는 믿음을 준 것이다. 지금 아브람 족속이 완전히 선하고 옳은 사람들이 아니다. 앞으로 펼쳐질 성경의 역사 속에서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모자란 짓으로 인해 곤경해 처하는 일들이 많다. 아마 400년 노예 될 짜리 일들을 만들 것이다. 그것을 신이 구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또 신과의 관계를 다시금 다지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잘 안되면, 400년이 걸리겠는가. 우리가 하루이틀, 일 년 이년, 십 년 이십 년씩 해서 신과의 관계 다짐이 잘 안 되는 것으로 좌절할 일이 아닌 것이다. 신이 보는 장기적인 비전과 실현 속에서 신은 개인뿐 아니라 민족을 붙들고 수백 년을 나아가신다. 그러니 거기 맡기고, 신과 함께 가는 것이다. 그러면 신의 뜻에 합당한 때에 신의 사람, 신의 민족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로 정해졌으니.


신을 따르는 사람의 정체성은 우리의 지금 시기와 모습이 아니다. 신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 되니, 그의 때에 따라 그가 우리를 통해 비전하는 모습으로 이루어진다. 이제 말뚝은 신에게 박고, 나의 때와 모습은 잊고, 그가 이미 실현해서 준비해 놓은 때와 모습을 기꺼이 받으면 되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400년이 갈 수도 있다. 얼마나 우리가 신에게 벗어나 헤매느냐에 달려있다. 또는 얼마나 빨리 신에게로 돌아오느냐에 달려있다. 

내가 그래서 성경을 읽고 있다. 이제 그만 헤매려고.

신의 품이 한 권의 책 앞에, 한 장, 아니 한 줄의 말씀 앞에 열려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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