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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흐름 Oct 17. 2023

중보기도, 내 코가 석자라도

[성경] 창세기 20장




성경 창세기 20장을 읽는다. 

아브라함이 '그랄'이란 곳에 잠시 머물 때이다. 거기서 그는 자기 아내인 '사라'를 여동생이라고 말해서 그랄 왕인 '아비멜렉'이 사라를 데려가도록 둔다. 그 땅이 신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사라가 자신의 아내인 줄 알면 어차피 자신을 죽이고서라도 취해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둘은 혼인 전에 배다른 남매 사이가 맞았으며, 신의 명령으로 고향 떠나 떠돌게 될 때에 서로를 남매라고 하여 목숨을 지키자고 약조한 터였다. 

그날 저녁, 신이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 남의 아내를 취한 대가를 죽음으로 치를 것을 예고하고 그의 대가 끊어지도록 그 집 여자들의 태를 닫아 아이 갖지 못하게 하신다. 그러자 아비멜렉이 그런 줄 몰랐다, 자신은 사라를 아직 손대지 않았다고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에 신이 이르기를,

"그래, 네 말이 사실인 줄 내가 알겠다. 그리고 네가 사라를 욕보이지 않은 것은 네가 죄짓지 못하도록 내가 막아준 것이다.  이제 네가 그 여자를 제 남편에게 돌려주면, 그 남편이 예언자 되는 사람이니 그가 하는 기도로 하여금 네가 살게 될 것이다."

다음 날 아비멜렉이 왕국사람 모두에게 이 일을 알리고, 아브라함과 사라를 불러 둘이 남매라고 한 연유를 따져 물어 자초지종을 듣는다. 그리고 그 둘에게 공식적으로 자기 땅의 거주권을 주고, 누구도 죄 없다 하는 값을 후한 재물과 가축, 종을 주어 치러준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신에게 기도하여 신이 아비멜렉 집안 여자들의 태를 열고 그 집에 대가 이어지도록 한다. 아멘.





창세기 20장 사건의 중심에는 신이 아브라함에게 주고자 하는 '축복'이 있다. 20장 전부터 아브라함 부부는 신이 그들에게 아들 낳게 해 주겠다고 약속한 것을 온전히 믿지 않는 상태였다. 당시 사라가 아이 갖지 못하는, 태가 닫힌 몸을 가졌기 때문이다. 축복이 실현되는 조건은 신과 사람 사이의 온전한 신뢰이다. 그 신뢰가 바로 '믿음'이기에 신은 그들에게 아들 낳는 축복 주고자 그들을 믿음이 생기는 자리, 곧 신과 아브라함의 신뢰를 다지는 자리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그 자리가 이번에는 그랄이 된다.

                                                                               

이번 장에서 아비멜렉 집안 여자들의 태가 신의 뜻으로 닫혔다 열리게 되는 사건이 있다. 그것으로 아브라함 부부는 신이 사람의 탄생을 관장한다는 것을 증거해 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자랐을 것이다. 특별히 그 과정에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해 '중보기도'로 참여를 한다. 중보기도란 신과 죄인 된 인간 사이의 관계회복을 중재하는 기도이다. 아브라함의 중재 하에,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땅의 지도자와 신의 관계가 회복이 되고 그 덕에 자신(아브라함)과 신 사이의 신뢰도 회복되면서 아비멜렉의 집안뿐 아니라 20장 이후에 사라의 태도 열리니, 결국 두 집안이 후손을 보고 대가 이어지게 된다. 이로써 중보기도란 쌍방 축복이 성립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내 코가 석자라도 어려움에 처한 남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면 그 복이 자신에게도 돌아오는 것. 그렇게 중보기도로 '기적 동료'의 관계가 맺어진다. 

비록 처음에는 아브라함이 잠시 곤란한 상황에 처하지만, 나중에 그 가정에 큰 축복이 되는 것은 아이 낳게 된 것 뿐만 아니라 신에게 쓰임 받는 영광이 있었고, 예언자로 위치가 높아지고 그것이 남을 복되도록 하는데 기능함에 있다. 덤으로 재물과 그랄 땅의 거주권까지 가지게 되었으니 신이 그를 일석 몇조로 인도한 것인가. 


기적은, 신과 나와 남의 관계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내 의지만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신의 의지만으로 하시는 것도 아니고 남 좋으라고만 생기는 것도 아니다. 신이 우리 삶을 인도하는 방식이 아무리 불안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과 나눌 티끌만 한 믿음이 있으면 신은 그것을 크게 보시고 축복의 순환을 만들어 주신다. 그 믿음의 원리 안에서 남을 돌아보면, 내가 중보기도로 축복하고 위로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곧 나와 신의 관계 회복이요, 나에게도 돌아오는 축복과 기적이 주렁주렁 열렸음을 알 수 있다. 


신이 복주고자 하는 뜻을 세상의 모자람 속에서 발견하기를.

그때 신이 하는 속삭임, 

'기도해 주련'

에 귀 기울이고 그저,

'당신(신)과 우리의 관계가 바로 서기를 원합니다. 당신을 향한 신뢰와 믿음으로 우리의 모자람이 당신의 축복으로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믿음을 회복하는 길로 인도하시고 견고케 하시고, 당신의 손으로 당신이 주고자 하는 축복을 이루시고 당신 영광이 높아지게 하소서.'

하고 '아멘'으로 실현시키기를.

모두가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그 기도를 자신의 축복과 기적으로 수확하는 계절 되기를.

그리고 우리가 기적 동료로 하나 되기를.

모두가 신의 영광이 드리운 지붕 아래서 안심하고 평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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