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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막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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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흐름 Jul 23. 2024

오줌을 쌌다





그저께 나는 자다가 오줌을 쌌다. 다 큰 성인이.

꿈에서 오줌을 누는데 눠도 눠도 하염없이 나오길래 이게 무슨 일인가 하다가 눈을 떴다. 침대를 나와 화장실을 가보니, 역시나.

대단히 행운인 것은 마침 내가 하고 있던 생리대가 그 많은 양의 액체를 고스란히 담아내었다는 것이다. 흡수력이 기특해서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속옷에도, 잠옷에도, 침대에도, 이불에도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그나저나, 뜬금없이 왜 오줌을 그렇게나 시원하게 쏟아낸 거야? 보통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자다가 일어나서 가는데?

아마, 긴장이 풀어져서 그런 것이리라.

무슨 긴장을 얼마나 했길래?


잠들기 전, 나는 친한 언니와 전화통화를 했었다. 내가 긴 시간 안고 있는 문제들과 언니의 문제들을 놓고 우리는 서로 다독이고, 응원하고, 기도하고, 축복했다.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으면 방광까지 릴랙스가 된 것인가.


유아교육자로서 나는 많은 아이들의 기저귀를 간다. 어느 날 한 아이의 기저귀를 확인하고 있는데, 아이의 친구 녀석이 옆에 와서 ‘나는 팬티 입는데.’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던 것이 떠오른다. 생리현상 조절 능력이 늘었다는 것은, 그래 좋은 현상이다.

헌데, 지금에 생각해 보니, 어쩌면 그것은 조절 안 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일 수도 있겠는걸?

조절, 즉 컨트롤을 하려면 우리는 긴장을 해야 한다. 무의식 중에 조절하게 될 만큼 익숙해지면, 자동으로 신경도 안 쓰고 쉽게 하는 듯 하지만, 컨트롤하지 않는 자유는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기저귀 안 차는 아이들이 실수하고 오줌을 옷에 지려놓으면 어떤 교육자는 한숨을 쉬고 아이를 타박하고서  부루퉁하게 옷을 갈아입힌다. 아이에게는 수치감을 느끼고 자신감이 사라지는 경험이 될지 모른다. 그래도 비단 우리가 문명에서 살아남고(또는 야생에서조차) 어른 행세를 하려면, 자기를 컨트롤하고 긴장을 무의식이 되도록 갈아넣고 기저귀는 떼고 당당하게 팬티를 입고 살아가야 한다. 마른 속옷과 겉옷을 유지하고 마른 잠자리에 누웠다 마른 잠자리에서 씩씩하게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수치스럽지 않고, 그래야 누군가가 내 최소한의 은밀한 자신감을 갉아내지 않는다.


그런데 나의 방광부터 지켜온 컨트롤이자 자신감, 의식이자 동시에 무의식이 된 긴장감이 무너진 것은, 내가 언니 앞에서 수치스럽기로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나의 속살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나를 까발려서. 기저귀도 안 뗀 어린 아이로 미숙함의 민낯을 드러내고 억지로 어른 행세를 하지 않고서. 문명 따위는 개나 주고, 야생이라면 차라리 나를 잡아먹으라 하고서. 언니도 마찬가지로.

그리고 우리가 서로가 싸내는 아픔을 군말없이 따스하게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발가벗어도 오물이 묻어도 괜찮다고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안심하고 잠자리에 누운 것이다.

마음도 놓고 몸도 놓고.

방광 채우고 살아가던

긴 세월의 긴장까지 놓였나 보지.


오줌 쌀까 봐, 아니 혼이 날까 봐, 아니 쪽팔릴까 봐, 그래서 내가 초라해질까 봐 방광을 조이고 잠도 못 자는 아이들과 어른들을 그린다.

차라리 날 잡고 기저귀 차고서

욕하는 새끼들 얼굴에 오줌이나 시원하게 갈기는 꿈을 꾸소서.

그게 자신감이지 뭐.

그냥 쌀 권리와 자유.

어디서 수치를 들먹이겠나. 방광에 인상쓰고 사는 댁들이. 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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