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막 사춘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흐름 Jul 23. 2024

앗차

Dr. Li의 안부






오늘 Dr. Li가 있는 피부과에 발가락에 생긴 사마귀를 보여 주려고 갔다. 의사 선생님께 치료를 받고 병원을 나서는데

앗차,

깜빡하고 하지 못한 말이 생각이 났다.

병원 오기 전, 발에 촉촉이 로션을 바르고 한국에서 사 온 하얀 꽃무늬 양말을 신어서 오늘 당신과 내 발가락의 만남에 즐거움을 더했노라고.


사실 더 중요하게 검사를 받은 것은 몇 년 전 수술한 손가락이다. Dr. Li는 내 손톱 밑에 생겼던 작은 양성 종양을 발견해 주었더랬다. 최근 그 손톱에 변화가 생겨서 오늘 진찰을 받았다. 그리고 Dr. Li의 재발가능성이란 말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인상을 잔뜩 구기게 되었다. 수술 동의서 사인부터 병원 퇴원의 과정까지, 호주에 가족이 없는 나로서는 그 절차가 사뭇 곤란했었기 때문이다.


Dr.Li는 아주 객관적인 무표정의 모습이었다. 선생님에게 나를 위해서 웃어 달라고 말할걸. 병원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처럼 씨익, 하고 웃어달라고.


어제는 슈퍼에서 쇼핑을 마치고 집에 딱 도착한 순간, 까먹고 사지 않은 물건이 생각났다. 그렇지만 버스에서 마주친 친구에게 인사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물건 따위는 잊어버려도 친구를 챙기는 중요한 것은 잊어버리지 않았는데.


가만, 내가 Dr.Li의 안부를 물었던가?

그가 내 손가락과 발가락의 안부를 묻고 살피는 동안, 나는 내가 내 머릿속에 가득 차서 그도 사람이라는 것을 잊었다. 선생님 덕분에 저번에 종양을 잘 제거했다는 감사도 잊었네?


눈에 보이지 않는 피부 저 아래와 양말 속에 숨어서 종양이든 사마귀든 혹덩어리가 자라기도 한다. 아무런 표정 없이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생겨서 말이야.

살펴봐야 알지.

안부를 물으며 자세히 들여다보며.


재진 가는 날,

꼭 Dr.Li의 안부를 묻고,

감사를 전하고,

발에 촉촉이 로션을 바른 것과 예쁜 양말에 대해서 말하고,

남성용 양말을 선물로 드리면서 같이 웃어야지.

헤헤헤, 하고.

지금 재발이고 뭐고, 지금은 지금이고

그때는 그때니까.

아니, 그때든 지금이든 살펴줘서 고맙다고.

나도 당신을 살핀다고.

서로.


우리의 안녕을 빌며.












매거진의 이전글 여기선 벗어도 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