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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트 루트 Jan 09. 2018

<신과 함께>는 그냥 판타지가 아니다

군 의문사를 다룬 리얼 드라마로 읽어 보자!

오래전 일이다.

무려 20년 전이니까...

그 때 나는 느즈막히 군대에 가 있었다.

아, 군대!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에 대한 어떤 심리를 가지고 있다.

아니 미필자 빼고~ 

아니 미필자들도 어쩌면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는,

군대는 가기 전의 공포와 다녀온 뒤의 악몽이 뒤범벅된 공간이다.

태어나서 한번도 겪어 본 적 없는 비인간적인 대우와

한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일들을 직접 해내야만 하는 공간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닥칠까를 늘 조마조마하면서 살아내야 하는 공간.


아, 다시 생각해도 정말 싫다!

5월의 그 찬란했던 태양도,

"오늘 하루 행복하길~"로 시작하던

기상곡 김종서의 '아름다운 구속'도,

그 시절 막 등장했던 자우림의 첫 앨범도

다 싫다.

아니 지금까지도 난 그 음악을 들으면

그때의 공포와 악몽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어쩌면 20년이 지난 지금도 누군가와 군대 이야기를 나누는게 싫은지도 모른다.

꽤 짧은 주기를 반복하면서 스멀스멀 기어올라오지만,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지도 않고 누구를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지도 않은 기억이다.

그냥 통째로 내게서 사라져 주길 바라지만,

너무나 힘이 센 놈이라서 내 마음대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기억의 편린들...


이병 생활로 시작했던 그 군대에 한 고참이 있었다.

나는 2년 2개월 동안(그 때는 복무기간이 26개월이었다.)

군 생활을 하면서 딱 한번 그 자식한테 맞았다.

우리 때만해도 군대가 좋아져서인지,

아니면 내가 그래도 좀 괜찮은 부대에서 근무한 탓인지 딱 한번 뿐이었다.

화장실 청소가 제대로 안됐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갓 일병이었고 그 자식은 일병 중간쯤 됐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전역할 때까지 그 자식과 한번도 말을 섞지 않았다.
물론 중간에 그 자식이 아파서 후송 다녀온 기간이 꽤 길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나는 누군가에게 부당하게 맞고 나서

아, 사람이 어쩌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거구나 하는 살의마저 느끼기도 했다.


<신과 함께>를 봤다.

확실히 신파다.

김용화 감독 특유의 울고 짜고다.

한국 관객은 이런 판타지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어쩌다 천만을 넘게 됐을까?


신파에다가 군 의문사라는 기막힌 소재를 섞었다.

한국 사회에서 해결되지 못한 수많은 역사적, 현재적 문제들 중의 대명사, 군 의문사.

친일 청산, 위안부, 5.18, 민주화, 세월호... 등은 집단의 기억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고통하고 신음했던 기억이다.

그래서 쉽게 동조가 된다.


그런데 군 의문사는 개인의 기억이고 가족의 기억이다.

직접 개입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쩌면 남의 일일 수 있다.

그러나 "1948년 국군 창설 이래 아무런 예우 없이 사망한 군인의 숫자가 대략 3만 9천 명"이라는 통계가 있다.

"한 해 평균 130여 명의 군인이 사망하는 나라, 그리고 그 중 2/3의 사망자가 '자살로 처리되는' 대한민국 군대"(고상만, "군대에서 '개죽음', 몇 명인지 아십니까?" 오마이뉴스 기사, 2016.1.13.)


나는 영화를 보다가 울었다.

영화는 자홍이 엄마에게 한 잘못에 초점을 맞추는 것같았다.

그래서 엄마와 아들 사이에 끊어질 수 없는 정과 사랑을 호소하면서 눈물을 뿌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더 아픈 건 사실 수홍의 이야기다.

해원(解怨)할 수 없는, 그 어이 없는 죽음의 무게가 더 아팠다.


어쩌면 많은 이들이 어처구니 없는 실수 때문에 군대라는 가장 젊은 공간에서 삶을 마감한다.

문제는 실수 이후에 그걸 바라보는 태도다.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엄폐하려는 태도는 깊이 패인 삶과 죽음의 상처를 다시 후벼내서 더 깊은 상처를 낸다.


군 의문사는 개인의 기억들로 점철된 우리의 집단기억이 돼야 한다.

<신과 함께>가 천만 관객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어머니와 아들, 가족 관계라는 보편 정서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처우 속에서 가장 고귀해야 할 삶을 억울하게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원혼들의 아직 풀리지 않은 아픈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과 함께>는 판타지가 아니다.

그건 우리 앞에 주어진 다른 이름의 숙제일 뿐이다.

쓸쓸히 청춘을 바쳐야 했던 그 분들의 명복을 빈다.


한 마디만 더 하자.

원일병처럼 관심을 가져주어야 할 미성숙한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곳은,

비단 군대라는 공간만이 아닐 것이다.

모두가 고슴도치처럼 살 부비면서, 상처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지만,

그 와중에도 더 깊이 찔리는 상처가 있다.

새해에는 '고슴도치 딜레마'를 현명하게 이겨낼 수 있기를...



<사람, 공간, 일곱 빛깔 이야기>는 (사)아시아문화콘텐츠 연구소 소속 필진 7명이 함께 써가는 매거진입니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최신의 문화콘텐츠와 트렌드를 색깔을 살려 소개하고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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