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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Jun 28. 2020

착각은 자유

내 맘대로 생각했다 뒤통수 제대로 맞았습니다.

오늘도 택배가 왔다. 우리 집 택배의 1/3은 책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책 욕심이 많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지금의 나는 책 욕심이 많다. 책장을 아무리 큰 사이즈로 마련해도 방보다는 클 수 없는 법. 덕분에 자꾸만 배송되어 오는 책은 책장의 한 줄을 다 채우고도 모자라 두 줄로 꽂혔다. 결국 책 윗 편 공간까지 꽉 차서 더 이상 책을 수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은 안방 장롱 빈 공간이 책으로 채워지고 있는 중이다.


책이 많아지면서 한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 '다 읽고 사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러던 중 "책꽂이에 있는 책이 다 읽은 책이면 무슨 재미로 사냐"는 말을 들었다. 기뻤다. 마음껏 동조했다. '그래, 읽고 싶은 책, 읽을 책들도 있어야 책꽂이를 볼 맛이 나는 거야!' 누군가의 지지를 받는다 생각하니 더욱 신이 나서 책을 구입하고 있다.


이렇게 꼭꼭 들어차 있는 책꽂이에는 제법 긴 시간 꽂혀있었지만 읽히지 못한 책들도 많다. 최근 <디플레 전쟁>을 출간한 홍춘욱 박사의 <유쾌한 이코노미스트의 스마트한 경제공부>도 그중 하나다. 근래 들어 '지금'에 초점이 맞춰진 책만 읽은 듯하여 이 책을 꺼내 들었다.



혹시 제목만 보면 어떤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가?(진짜 궁금해서 묻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뭐 그런 의미에서...) 그 흔한 리뷰 한 번 읽어보지 않았고, 그냥 읽어두면 좋을 것 같아서 구입했다. 경제 상식이나 기초 공부가 되리라 기대했던 마음은 책을 1/3 정도 읽는 동안 조금씩 무너졌다. 나는 이 책에서 무엇을 기대한 거지?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그냥 왠지 필요할 것 같아서,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재밌어 보여서 이런 이유로 책을 구입할 때. 아마도 이 책은 경제 공부를 놓지 않을 나를 위해 필요할 것 같아서 구입했던 책이었으리라.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경제의 기본을 다루는 책은 단연코 아니다. 이제 책을 새롭게 제대로 마주해야 할 때이다.



Photo by Randy Jacob on Unsplash



몇몇 리뷰를 찾아보다 책을 덮었는데 그동안 눈에 띄지 않던 뒤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베스트셀러 <환율의 미래>의 저자 
경제 비즈니스 분야 NO.1 파워 블로거
연간 200권의 책을 읽고 50편의 서평을 쓰는 문자 중독자 
과연 현장의 이코노미스트는 어떤 책을 읽어 왔을까?


짐작이 가는가? 이 책은 홍춘욱 박사가 지금까지 지나온 길에서 인상 깊었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책들과 함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책이다. 독서의 길잡이 같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경제 편이라고나 할까?


미리 말하지만 경제적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 책을 접한다면 낯설고 생소한 경제 용어들이 어느 순간 당신을 공격할지 모른다. 마음의 준비 없이 그냥 읽었다가 나도 좀 당황스러웠다. '뭐야, 이거 기초 서적 아니었어?' 친절하게 경제 용어를 A부터 Z까지 설명해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다가 예상치 못한 훅을 맞은 기분이었다. 책 제목에도 책 소개 어디에도 '기초적인', '친절한' 같은 단어는 쓰이지 않았는데 왜 그런 착각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저자가 가능한 책을 쉽게 쓰려고 하는 분이라는 내 안의 믿음이 선입견을 가지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시선을 달리해서 읽으니 책이 제법 재밌다. 원했던 방향이 아니라고 해서 책이 나쁜 건 아니니까 말이다. 


다 읽고 나서의 소감은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 지금은 홍춘욱 박사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 과정에서 읽은 책은 어떤 책인지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언급한 책을 다른 이코노미스트들이 언급했던 영상을 찾아보기도 하고, 몇몇 책은 장바구니에 넣는다. 지금의 시국에는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독서의 재미는 책을 읽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하는 즐거움이 하나의 즐거움이라면 그 책을 다른 책과 이어 생각해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해한 지식을 지혜로 탈바꿈시켜 나누는 즐거움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나눠준 지혜를 기반으로 책을 접하는 재미도 색다르다. 지금까지는 이런 재미들만 알았는데, 이번엔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재미가 있음을 알았다. 어떤 책일지 짐작해 보는 재미. 짐작하지 못한 내용이 들어있는 반전의 묘미까지. 

내 마음대로 짐작했다 뒤통수를 제대로 맞긴 했지만, 생각지 못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덕분에 허허 웃으면서 책을 읽고 있다. 책은 그냥 있었을 뿐인데 나 혼자 생쇼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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