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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Jun 30. 2020

내가 좋아하는 것은?

자신만의 모습으로 아름답고 당당하게 살아가길.

책을 읽다 말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갖는다. 커피를 내린다.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를 계속 흥얼거리게 된다. (딸아이가 다음 촬영에 이 노래를 부르겠다고 지금도 연습 중이다.) 촉촉하게 내리는 비가 사람을 감성적으로 이끄나 보다. 처음 서평을 시작했을 때가 생각났다. 2주일에 한 권을 읽고 한 편의 서평을 쓰는 게 그렇게 힘들었다. 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건지 너무 대단해 보였다. 


한 달 서평을 처음 하면서 제일 많이 했던 말이 "시간이 정말 너무 모자라요."였다. '생각해보면 더 시간을 낼 수 있어요. 지금 생활을 돌아보세요.' 하는 아픈 충고는 들리지 않았다. 다들 "잘하고 있어요." "아이가 세 명이나 집에 함께 있잖아요." "지금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예요. 힘내세요." 등의 말로 따뜻하게 격려해 주고 힘을 낼 수 있게 토닥여주었다. 정말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고,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했다.

그렇게 매일 읽고 쓰는 시간을 두 달을 보내고 나니,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하고 싶은 거야 많지만 늘 나만을 위한 것만 해 온 지라 아이와의 시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도 시도해 보고자 했다. 그렇게 아이의 유튜브를 시작했다.


'타협하지 말고 온전히 자신의 모습으로 아름답고 당당하게 살아라.'


지금 읽고 있는 니체가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괴테의 명언이다. 나는 아이가 온전히 자신의 모습으로 아름답고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세상에 맞서 싸우라는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의 모습으로 자신의 속도대로 자신만의 삶을 행복하고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싶다.


"제일 진저리 나는 일은 항상 다른 사람인 척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네. 교수인 척, 문헌학자인 척, 인간인 척 연기해야 한다는 거지."


<니체의 삶>에 나오는 니체의 편지 일부다. 어린 나이에 교수가 된 니체는 지혜로운 사람인 척 보이려고 나이 들게 옷을 입었고, 어머니의 말이 듣기 싫었지만 착한 아들인 척 행동했고, 기독교적 신앙을 잃어가고 있음에도 목사였던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순종적이고 다정한 아들인 척 연기해야만 했다. 말년에 그의 정신병이 유전적인 것인지 다른 어떤 요소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의 많은 시간을 본인의 모습이 아닌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모습으로 꾸미고 살아야 했다는 것도 그의 영혼을 아프게 한 하나의 요인이 아녔을까?



쉬어가듯 받아 들 질문지에 지난 15일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 적혀있다. 15일 동안 나는 어떤 글들을 썼을까? 매번 충실하려고 노력했고, 지식을 지혜로 나누고자 애를 썼다. 그렇지만 돌아보면 잘 보이고 싶어 힘을 준 글도 보이고, 새로운 시도라고 핑계 대고 요령 피우며 쓴 글도 있다. 억지 부린 모습이 보여 부끄럽기도 하고, 글 쓰던 당시의 유쾌함이 아직 가시지 않은 글도 보인다.


어쩌면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은 어제 쓴 글일지도 모른다. 아직 글 쓸 당시의 기분이 남아있어서 냉정하게 판단이 안 된다. 어제 쓴 글이지만 방금 초고를 쓴 것처럼 글을 쓸 때의 기쁨, 설렘, 신선함이 느껴져서 좋다. 어제 글은 책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의 나만의 느낌, 공기의 움직임, 설렘, 향기, 온도가 글 속에 살아있길 바랬다. 원했던 글의 완성도에 비하면 1/10도 미치지 못하는 글이지만, 처음 시도했고 마무리를 할 수 있어서 아쉬움보다는 보람이 아직까지 크기도 하다.


내가 해 보는 많은 도전과 시도가 어떤 결과물로 남을지 지금은 알 수가 없다. 다만 이런 시도들이 개인적으로는 나만의 개성을 찾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다. 여기에 욕심을 조금 부리자면 엄마의 다양한 노력과 시도가 아이들에게도 하나의 배움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 엄마도 했잖아. 엄마는 늘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셨어. 포기하지 않으셨어. 나도 할 수 있어. 이 정도의 메시지만 전달해도 지금의 노력들이 헛되지는 않을 것 같다.




Photo by Asiya Kiev on Unsplash



평생 김치밖에 못 먹어본 사람은 뷔페에 가도 김치만 먹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산해진미가 가득한 뷔페에서 뭐가 맛있는지, 어떤 음식이 나의 입맛에 맞는지 몰라 김치만 접시에 담고 있다면. 어떤 음식이 어떤 맛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 두리번거리면서 남들이 담는 음식만 따라 담고 있다면 너무 불행하지 않을까? 


자신만의 모습으로 당당하고 아름답게 살아간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모습이 정말 나의 모습인지 다양하게 시도해보고 겪어보아야 한다. 시행착오도 겪고 힘든 것도 알아야 한다. 불편한 걸 보니 이 모습은 내 모습이 아니네 스스로 깨닫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의 시선에서 얼른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보는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요즘 학교에서는 '안심알리미'라는 서비스를 해 준다. 단말기를 가방에 넣은 후 아이가 학교 교문을 통과하면 등하교 정보를 자동으로 알려주는 서비스이다. 물론, 유료 서비스다. 


사실은 어제 아침에 작은 실랑이가 있었다. 혼자 등교를 할 수 있다는 아이와 무사히 등교했음을 확인할 방법이 없는 엄마의 불안이 대립했다. 결국 단말기가 올 때 까지는 엄마랑 등교를 하되, 학교 앞 사거리에서부터는 혼자 가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늘 입으로는 '얼른 독립해라', '혼자 다 하는 시기는 언제 오냐.' 했는데 막상 혼자 뭔가를 하겠다고 하니 무조건 지지하지 못하는 나의 이중성에 소름이 돋았다. 세상이 무섭고,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 조심하면 좋겠다는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고작 10분 거리의 등교도 한 번에 믿고 지지하지 못하면서 무엇이든 다 믿어주는 엄마가 되겠다는 말에 얼마나 책임질 수 있을지. 육아는 현실이라는 말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늘 부족했고 항상 모자란 엄마다. 아이를 믿고 지지해주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다음엔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 조금은 나의 긍정적 발전을 믿어보며 다시 아이와 힘차게 '사랑을 했다'를 듣고 놀아야겠다. 부디 이 모든 순간이 아이가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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