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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Jul 15. 2020

함께하기에 외롭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격려와 응원으로 한 달을 채울 수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유독 버겁게 느꼈던 한 달이었다. 물론 곁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언제 안 힘든 적이 있었냐?' 하겠지만 말이다. 열흘 즈음이던가? "겨우 열흘밖에 안 지났어? 어휴~ 한 달 동안 어떻게 계속하지." 소리가 절로 나왔다. 돌아보니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겪는 당연한 어려움인 것을 그때는 다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게 받아들였다.


처음 서평을 시작했을 때에는 매일 책을 읽어도 글감을 찾지 못해 헤맸고, 한 단락을 쓰는데 몇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시간이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평균 2시간~ 4시간까지 독서를 하고 2시간 남짓이면 글을 쓰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한달서평'을 해오면서 점점 시간 쓰기가 효율적으로 변한 것이다.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무언가 하나 더 해도 될 것 같았다. 메타인지가 부족했던 것일까? '하나 더'가 온 삶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예상과는 다르게 유튜브는 시간을 잡아먹는 블랙홀 같은 존재였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독서 시간은 1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그나마 글 쓰는 시간이 줄어 한 시간 남짓이면 완성할 수 있었기에 여유 시간이 확보된 것이 천만다행인 정도였다. 독서량이 터무니없이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글은 짧아졌고, 노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계속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되묻게 되는 시점이었다.


예전엔 120의 노력으로 글을 썼다면 지금은 50의 노력도 못 넣어보고 마무리하기 급급한 건 아닌지. 무엇을 위해 읽고 쓰고 있는 중인지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충분히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의 결여와 날로 먹은 듯한 결과물로 인해 나는 지쳐가고 있었음을 깨닫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다시 삶의 중심점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미라클 모닝을 포기했다. 충분한 수면 시간 확보로 스트레스를 줄이기로 했다. 최소 7시간 이상 수면을 취하되 6시 전에 일어나려면 늦어도 10시에는 취침모드에 들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뒹굴거리는 시간을 감안해서 7시간은 잘 수 있다. 실제로 수면 양과 상관없이 스스로 거기에 얽매여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정말 과감하게 포기했다. 미라클 모닝은 눈이 떠지는 날 하자. 이렇게 마음먹고 나니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문제는 눈이 떠지는 날이 없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글에 대한 욕심도 내려놓았다. 꼭 어떤 형식으로 써야 한다는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세운 계획들도 조금 뒤로 미뤘다. 되는대로 생각나는 대로 쓰고 싶은 대로 쓰기 시작했다. 덕분에 목적지와 전혀 다른 곳에 정착해버린 글들도 수두룩하지만, 대신 글을 쓰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무엇이든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만족은 마침표를 찍었다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 


닥치는 대로 찾아보며 하던 편집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여유가 생겼다. 책을 읽는 마음도, 책을 선정하는 기준도 가볍게 손길 가는 대로 편하게 두었다. 그러니 다시 이 모든 것들이 조금씩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그래, 이 즐거움을 느끼려고 시작한 거였어.' 제자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세 번째 '한달'을 해보니 그 어느 때도 곡절 없는 시기는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결국 그 과정을 지나가는 힘은 스스로 키워야 한다는 점도 알게 된다. 다만, 이 곳은 어려운 시기도 쉽게 지나갈 수 있게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동료들이 있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혼자가 아니다.

'문우'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이가 있는 곳. 부족하다고 좌절해도 괜찮다 잘했다 다독여주는 동료가 있는 곳. 넘치는 이타심으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한달러들. 참으로 열심히 살며 최선을 다하는 그들을 보며 정말 많은 자극을 받았다.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이번 한 달도 마무리까지 할 수 있는 듯하다. 정말 감사한 곳이고 감사한 이들이다.



Photo by Shane Rounce on Unsplash




요즘 읽고 있는 책 속에 반 고흐는 지금 살고 있는 집(그의 노란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있다. 지역 주민 일부가 미치광이와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것을 두려워하며 그를 정신병원에 넣거나 가족들이 데려갔으면 한다는 진정서를 넣었다고 한다.


글 전반에 보이는 고흐는 이웃들에게 특별히 해를 끼치거나 위협적이지 않았다. 딱 귀를 자르는 그 사건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가 위험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면 집을 정리해주던 아주머니가 조카를 그림의 모델로 세워줬을 리가 없지 않은가. 물론 사람은 여러 가지 면을 가지고 있으니 평소에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고 좋은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말이다. 


나 역시 옆 집에 자신의 귀를 자르는 미치광이가 살고 있다면, 내가 이사를 가거나 그를 내보냈으면 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의 사정까지는 알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진정서를 낸 주민을 아주 나쁘게만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어제까지의 고흐는 세상에 혼자 버려진 사람같이 느껴져 아프고 안타깝기만 했다. 왜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그를 감싸 안아주는 사람들이 없었을까 하는 마음에 괜시리 그의 주변인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한 달을 마무리하면서 나의 주변에 있는 고마운 이들을 떠올려보니 상대적으로 고흐가 더욱 안타까웠다. 어디서고 사람으로 지켜지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 그의 상황이 떠오르면서, 멀쩡한 사람도 정신병에 걸리겠다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보면, 저자는 이 진정서에 서명한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며 이 것이 지역 전체의 의견이 아녔음을 밝히는 중이다. 아직 결과를 보지 못했지만 마음 한 편이 안도하게 되는 것은 그의 이웃들이 그에게 매몰차지만은 않았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오늘은 그래도 그의 곁에 정이 많고 그를 걱정해주는 이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어 마음이 시리지만은 않다. 정말 다행이다.


이제 책은 그를 내몰아서 이익을 추구하는 이들을 찾는 것으로 이어진다. 살다 보면 나의 불행이 누군가의 이익이 되는 지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나를 해코지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 그것이 삶을 망가뜨리는 거대한 일이 될 수도 있고, 내가 쓴 글에 악플이 달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같이 읽고 쓰는 동료들이 있는 한, 어느 정도는 그들의 격려와 지지를 기반으로 이겨내고 지켜내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지난 리프레쉬에 마음먹고 쉬었다는 글에 다정한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이 계신다. 지칠 순 있지만 지지만 않으면 된다는 말에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어쩌면 다가올 리프레쉬에는 글을 하나도 쓰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매일 습관처럼 또 쓸지도 모른다. 필요하다면 휴식을 취하기도 할 것이고, 아이들과 시간을 조금 더 가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을 하건 앞으로 2년 9개월 남은 기간을 달려가기 위한 시간임은 틀림없을 것이라 믿으며 지난 한 달을 꽉 채운 나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기까지 정말 잘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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