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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Aug 14. 2020

친구, 달콤하고 씁쓸한 이름

20년 지기를 잃고 난 후 

인생의 굴국을 겪는 시기가 되면 주변의 사람이 정리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취직이 되지 않아 수중에 돈 한 푼이 없어지면 연락이 잘 안 되는 친구가 생긴다. 나의 경우 내게 닥친(아니 내가 선택한) 힘든 일이 버거워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힘들지만 잘 선택했다고, 그건 너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토닥임을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도 받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자칭 타칭 '베스트 프렌드'였던 친구는 그때 내게서 등을 돌렸다. 마치 '너의 불행은 모르겠고, 나는 좀 바빠서...'이런 느낌이었다. 


의외로 마음을 많이 주지 못했던 이들이 나를 위로해 왔다. 괜찮다. 그럴 수 있다. 그까짓 게 무슨 대수냐. 이 참에 그냥 좀 쉬는 것도 좋다. 잘못된 선택으로 평생을 불행하게 사는 것보다 지금 잠시 힘들고 더욱 잘 살면 된다. 이런 말들을 나눠준 이들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지인들이었다. 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네가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로해 주고 있는 거니? 찾아가 묻고 싶었다.


Photo by Briana Tozour on Unsplash


따돌림 비슷한 걸 당했던 학생 시절을 보낸 덕에 유년을 함께 보낸 친구의 수가 몇 안된다. 그중 가장 친했던 친구를 잃었다. 서로가 어릴 적 모습을 봐왔고,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했던 친구였다. 성장기를 돌아봤을 때 그 친구를 빼고는 이야기를 할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함께한 이라 더욱 아팠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웠던 선택을 수습할 사이도 없이 친구에게서 받은 상처는 나를 너무 아프게 헤집었다. 덕분에 그 상처는 돌보지 못한 채 그냥 묻어버렸다. 흉터도 보기 싫어 덧칠을 덕지덕지 하면서 잊으려고 그렇게 감정을 묻었다.



솔직히 100퍼센트 축하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나는 친구들에게 닥친 경사가 매우 기쁘면서도 100퍼센트 축하만 할 수 없는 내 심경과 마주해야 했다. p.21



작가는 친구들 사이에 미묘한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낸다. 축하하지만 100퍼센트 축하할 수 없었던 못났던 마음을 들여보기라도 한 듯이 적어낸다. 결혼하는 친구를 온전히 축하하기 힘든 삐뚤어진 마음. 먼저 취직한 친구를 기쁘게 축하할 수 없는 씁쓸한 마음. 나보다 뒤에 취직했지만 기다리고 노력해서 아주 좋은 회사에 취직한 친구를 축하하며 은연중에 비교하는 마음. 나는 정말 순수하게 친구의 즐거운 일을 축하해 준 적이 있었는지, 정말 못나고 삐뚤어진 마음을 가진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왜 과거, 현재, 미래를 함께 하면서 그들에게 일말의 질투심을 갖지 않는 완전무결한 우정을 갖지 못하는가. 왜 나는 이토록 사랑하고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이런 못나빠진 생각을 갖는가. 누가 볼까 무서운 내 무의식은 나를 얼마나 나쁜 년으로 만들고 있는 것인가.
(중략)
그런데 이를 쿨하게 인정해버리면 적지 않은 소득을 얻는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 친구이긴 하지만 네 성공이 부러워. 그래, 나는 너보다 늦게 성공할까 봐, 아니 너와 나의 계급이 아예 달라질까 봐 두려워. 그래, 나는 네가 정말 잘되길 바라지만 내가 자괴감이 들 정도는 아니었으면 좋겠어. 나도 인정하기 싫은 내 속마음을 인정하면, 의외로 친구와의 관계가 관찮아진다. 그들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p.28



완전히 '친구'라는 상처를 열어볼 용기가 생긴 것은 아니다. 우연히 읽게 된 책 <혼자가 좋은데 혼자라서 싫다>을 보다 보니 나도 몰랐던,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을 누가 써놓은 걸 읽어버렸다. 

 





먼저 진심으로 친구의 경사를 축하하지 못했던 마음을 인정하는 것이 순서인 듯하다. 그래, 친구이긴 하지만 어떤 환경에서도 공부를 이어가는 너를 보니 솔직히 샘이 났어. 그래, 너만을 바라보고 너만 사랑해주는 이를 만난 걸 보니 부러웠어. 나는 영원히 혼자가 되는 건 아닐까 두렵기도 했어. 


이제와 다시 되돌릴 수도, 되돌릴 마음도 없지만 작가의 말처럼 '내가 그러니까, 남들도 그런 건 당연하다.'라고 생각하고 보면 그녀가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미안해. 그때는 너를 진심으로 축하할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네 말처럼 내가 먼저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이고픈 못생긴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 그래 놓고 너를 원망했다. 혹시 네 마음에도 나라는 응어리가 남아 있는 건 아닌지... 정말, 미안해. 내가 너무 못나서 그런 걸 그때는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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