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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Aug 26. 2020

미안해, 좋은 건 알았는데 하기가 싫었어.

뒤늦은 깨달음

이기적인 나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지 않는 엄마였다. 일단 책을 읽어주면 목이 아프다. 아이들은 그냥 앉아 나긋나긋 읽어주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동작도 크게, 목소리도 다양하게. 특히 어릴수록 '크아!' '피유~' '쿵!' 등의 소리도 많이 내야만 관심을 붙들어 둘 수 있다.


언제나 '대충'이 없던 엄마는 과도한 에너지 소모로 어느 날 포기를 선언했다. 이번 생에 책 읽어주는 엄마는 안 되겠어. 그냥 글자를 익혔으니 알아서 읽거라. 둘째와 막내는 가뭄에 콩 나듯 책을 읽어줘 버릇해서 책 읽는 시간을 어색하게 여기기까지 한다. 


Photo by Ben White on Unsplash


주 1회 등교는 아이를 규칙적인 생활로 길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주양육자인 나는 자는 아이를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며 깨우는 스타일도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자고 먹는 것에는 후한 편이다. 물론 (규칙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안에서도 질서를 만들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요즘은 놀기 전에 책 한쪽만 읽자. 동영상 보기 전에 문제집 한쪽만 풀자. 정도의 타협을 보고 있는 중이라 나름 완전히 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며 위안 삼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무식한 엄마가 세상에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을 만났다.




고백하자면 아이에게 읽고 쓰는 습관을 잡아주고 싶었다. 내가 해보니 좋은 점이 참 많아서, 아이도 같이 했으면 하는 욕심이 앞서 구입한 책이 맞다. 읽다 보면 하루에 3줄, 일기든 소감이든 쓰는 습관을 만들어 줄 팁을 얻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글의 뉘앙스가 기대가 무너진 듯 보이긴 하지만, 기대가 무너졌다기보다 엄마가 뼈 때리는 충고를 듣는 중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나는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시간이 진심으로 즐겁지 않았다. 다소 아니 많이 힘들었고, 다들 해야 한다고 하니 대충 없이 능력치보다 오버하다가 에너지가 고갈돼서 포기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는 계속 책을 읽었으면 싶었다. 요령 피우며 제대로 읽지 않을까 봐 크게 소리 내어 읽으라고도 했다. (아! 쓰고 보니 진짜 나빴다. 자기도 하기 싫으면서 애한테 시킨 꼴이 아닌가!)


거기다 읽고 나면 생각 쓰기를 시켰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어떤 느낌이었는지 자유롭게 써보라고 했다. 그 결과 모든 글은 "나는 0000을 읽고 이런 생각을 했다."로 시작했다. 8칸 노트에 이 문장 하나를 쓰면 공책의 1/3이 채워진다. 어느 날은 칸을 빨리 채우려고 제목이 긴 책을 가져오는 꼼수를 눈치챘지만 지적하지 않았다.(유일하게 잘한 짓이다.) 그렇게 한 줄이라도 뭔가 생각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 기특하다고 여기긴 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교육은 시작부터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첫째, 책을 읽지 않을 권리
둘째, 건너뛰며 읽을 권리
셋째,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넷째, 책을 다시 읽을 권리
다섯째,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여섯째, 보바리슴(마음대로 상상하며 빠져들 권리)을 누릴 권리
일곱째,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여덟째,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아홉째, 소리 내어 읽을 권리
열째,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이는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다크의 <소설처럼>에서 언급한 독자의 권리 열 가지라고 한다. 여기에 저자의 이야기를 조금 더 보태면 나는 더 나쁜 엄마가 된다.


책을 즐거운 놀이 도구로, 책 읽는 시간을 즐겁게 만들어 주세요.


아이가 책 읽는 시간이 정말 즐거웠을까? 확신하건대 절대 아녔을 거다. 아이가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알아챘으면 했지만 그에 비해 엄마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음을 내가 제일 잘 안다. 책으로 놀아준 기억도 많이 없다. 책을 많이 읽어주지도 않았다. 책 읽는 시간이 즐겁게 느껴질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종용했다. 아이고, 에미야... 아무리 곁에서 책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면 뭘 하니. 본인이 즐거움을 한 번도 느껴보질 못했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키프로스의 심리학자와 초등 교육학자가 초등학교 2, 4, 6학년과 중학교 2학년, 612명을 대상으로 듣기 능력과 읽기 능력과의 상관관계를 연구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읽을 때보다 들을 때 훨씬 이해를 잘했습니다. 고학년이 되어서야 듣기 능력과 읽기 능력이 비슷해지고, 중학교 2학년이 되면 읽기 능력이 듣기 능력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략) 이를 통해 초등학교, 아이에 따라서는 중학교 때까지도 책을 읽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p. 80


며칠 전, 아이와 책을 같이 읽었다. 소리 내어 읽으면서 모를 것 같은 단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이해가 안 될 것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순간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이렇게 말로 다 설명해주면 책을 읽는 의미가 없는 건 아닌가? 그렇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해줘도 반쯤 알아들은 것 같잖아. 그럼 혼자 읽으면 그냥 글자만 읽는 거 아냐?' 두 가지 상반된 생각에 잠시 갈등을 했다. 계속 이렇게 읽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당연한 과정인지를 말이다. 처음부터 계속해서 책을 읽어주면서 독서를 장려했다면 아마 이런 내적 갈등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같은 내용도 들으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연령이라는 당연한 사실도 몰랐다. 모르는 게 자랑이 아닌데 말이다.


독후 활동은 아이가 하고 싶어 할 때만 하는 것이 좋습니다. p.83


여기가 결정타다. 저자는 책의 내용을 이해했는지조차 점검하지 않았다고 했다. 분명히 시작은 살면서 내내 도움이 되는 행위이니 아이가 책을 가까이하고 즐겨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고 싶은 엄마의 욕심은 처음의 마음을 지워버리고 좀 더 '효율적으로' '효율적인 방법으로'를 찾아댔다. 


책을 많이 읽지 않으니 한 번을 읽어도 제대로 읽으면 좋겠지. 읽었으면 내용을 곱씹고 생각을 하는 게 맞아. 그럼 글로 써보면 좋겠네. 이왕 글을 몇 자라도 썼으니 띄어쓰기랑 맞춤법을 이 참에 해결하자. 아!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했어. 난 역시 똑똑한 엄마야.

정말 개똥 같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남은 챕터를 훑어보니 책을 읽는 습관을 어떤 방법으로 만들어주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아이의 일상에 읽고 쓰는 것을 스며들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얼핏 봤는데 여기서는 뼈를 맞다 못해 아예 부러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제대로 된 충고를 듣게 된 것을 다행이라 여긴다.


작심삼일이 될지, 하루 만에 목에서 피맛이 느껴진다며 다시 포기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날이 밝으면 새로운 마음으로 책놀이를 다시 시작해봐야겠다. 마침 아이가 읽고 싶다던 새 책도 왔으니 얼마나 좋은 타이밍인지. 


아이야, 언제나 부족한 엄마였지만... 미안하다. 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는 것이 좋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긴 해. 하지만 엄마는 진짜로 안 하고 싶었어. 이제는 나도 즐기는 마음으로 같이 할 준비가 됐으니까 지난 시간보다는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잘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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