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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Sep 23. 2020

모방은 창조를 낳을 수 있을까?

곰손이 금손이 되는 날까지

말의 힘은 강하다고 한다.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만 알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막상 해보면 알게 되는 것. 그것 중 하나가 선언하는 말의 힘인 듯하다.


처음 매일 읽고 쓰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일이다. 직장인이면서 동시에 출간 작가인 분께 비결을 물었더니 "3년을 매일 새벽에 썼습니다." 하셨다. 그에 충동적으로 "나도 3년 동안 매일 쓰겠어!"라며 호기롭게 글을 썼다. 그로부터 5개월 여가 지났다. 지금 발행한 글의 수가 113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뱉은 '3년'이라는 단어는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각인되어 오늘도 당연히 노트북을 켜고 앉아 무엇이든 쓸 준비를 하게 만든다. 나는 읽고 쓰는 사람이니까.



시작이 이렇게 거창한 이유는 또 다른 선언을 해야만 내가 움직일 것 같아서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그림 한 장 그리지 않고 디자인 감각 따위는 없어도 지난 40년을 잘 살 수 있었다. 패션, 뷰티, 그림, 회화 같은 분야도 크게 관심이 없어 고작해야 보는 것만 좋아했다. 그러다 시간이 너무 많아 고민이었던 20대 어느 때에는 부족한 미적 감각을 메워보겠다며 사진을 배우고 찍으러 다녔지만 선천적으로 그쪽은 감각이 없는 것인지 늘지 않은 실력 탓에 여전히 집 한구석에는 고가의 DSLR이 고이 잠들어 있기도 하다.


이런 내가 그림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을 둔 덕에 요즘 같이 그림을 그려보는 중이다.(그렇다. 메인 사진이 내가 그린 그림이다.) 그림이라고 쓰고 낙서라고 해도 부끄러울 실력이다. 실제로 어제 그린 그림을 SNS에 올리는 것을 본 남편의 반응은  단 한 마디였다. "부끄럽군."


아이의 그림이나 미술 작품을 함께 인증하는 목적으로 시작했다. 의도와는 다르게 점점 내 안의 모자람을 직면하는 과제를 하는 중인 것 같다. 초등 1학년인 딸이 그렸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수준의 그림. 무엇을 그릴까 고민할 수준이 안 돼서 그날그날 찾은 그림 중에 그나마 따라 해 볼만해 보이는 그림을 베껴보는 중이다. 


 

원본 출처 : 구글 이미지, <퇴근 후 색연필 드로잉>


모방이면 어때서요? 창작과 모방 사이에 건너지 못할 강이 있는 게 아닙니다. 창작은 모방에서 출발합니다. 창작은 창조적 모방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남한테 배운 것 아흔아홉에 단 하나라도 스스로 생각한 것을 덧붙일 수 있다며 이미 창작의 영역에 한 걸음 발을 들여놓은 겁니다. p.182


따라 그렸지만 비율이 귀엽지 않은 토끼 인형과 크레파스로 아이가 그린 듯한 그림을 보면 크게 재능이 없다는 건 나도 알겠다. 모든 것을 잘하겠다는 건 아니다.(잘하는 게 있긴 한 거니?) 요즘처럼 영상이 지배하는 시대에 기본적인 감각 없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재능이 없다면 비슷하게 흉내라도 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이 고민의 시작은 SNS로부터 출발한다. 아무리 찍어도 어두침침하고 암울한 사진들. 어떻게 보정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보정으로 원하는 결과물을 보는 게 가능한 건지도 모를 사진들로 채워진 피드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일까. 나도 금손이 되고 싶다. 감각적인 사진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적절한 일러스트(가능하면 ㅎㅎ)를 곁들여 한눈에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 나도 할 수 있을까?


하고 싶은 건 하고 봐야 하는 못된 성격이라 또 덤벼든다. 뒹굴거리는 내 캐릭터 하나 만들 때까지. SNS에 올리는 사진이 최소한 실제에 가깝게 보이는 정도까지는 노력해 보자. 모방이라 부르고 배움이라 쓴다. 현실은 원작 훼손에 가깝지만 이것도 하다 보면 비슷하게는 그리는 날이 오겠지.  <표현의 기술>에는 만화가 정훈이 님의 그림도 곁들여져 있다. (이건 도무지 어떻게 옮겨야 할지 몰라 사진으로 찍었다.)



처음엔 누구나 모방을 한단다. 일반인인 내가 좋아 보이는 그림을 따라 그리고 멋있게 찍힌 사진을 흉내 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똑같이 해내기도 쉽지 않으니 비슷한 느낌이 날 때까지만 해보자. 이것도 3년 하면 될까?? 곰손이 금손이 되는 날까지...라고 쓰면 너무 모호하니까. 뒹굴거리는 내 캐릭터가 나올 때까지. 이것도 매일 하자. 


"나는 이제 읽고 쓰고 그리는 사람이다." 


아.... 쓰고 나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워서 얼른 도망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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