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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Oct 03. 2020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합니다.

feat. 모지스 할머니

고백하자면 나는 아이를 키우기 전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세상에 무서울 것도 별로 없고, 부족한 것도 모르고, 간절한 것도 없이 그냥 모든 것이 다 거저 얻어지는 것처럼 그렇게 살았다. 시간이 남아돌아도 남는 게 시간인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고, 인성이 부족한 걸 뭐 어쩌겠느냐 방치하기도 했다. 생긴 대로 사는 게 뭐 어떠냐며 오히려 큰 소리를 치기도 했다.


그러던 내가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아이를 키우면서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부족한 것은 채워야 하는 것이었고, 시간은 남는 게 아니라 쪼개서 알뜰하고 소중하게 써야 하는 것도 배운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기 위해 매사에 고민하고 신중하게 행동해야 함을 깨닫고, 늘 배우면서 살아야 한다는 진리도 깨쳤다.



Photo by Bonnie Kittle on Unsplash


명절이건 휴가 건 노트북을 챙겨가는 것은 필수인 요즘이다. 언제 어디서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가능하면 운동을 하고 건강한 먹거리로 몸을 채운다. 뒤늦게 그림에 흥미가 생겨 조금씩 끄적여보는 중이기도 하다. 몇 번 이 모습을 보던 남동생이 한 마디를 한다. "또 뭐하노?"


그러게. 나는 또 뭘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일까? 명절에 가족들 만나러 와서도 노트북을 껴안고 씨름하고 있는 걸 보면 유별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이렇게 유별나게 굴지 않으면 애기 엄마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무엇 하나 하지 않아도 되는 충분한 이유가 되어버린다고 여기는 순간부터 정한 일을 못할 이유들이 수두룩하게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정말 웬만하지 않은 경우가 아니라면 매일 읽고 쓰고 그리기를 한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 이유를 찾아보려 해도 결국 이 모든 것은 나를 위한 것이고 스스로 만족하기 위한 것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조금 더 이유를 덧붙여보면 이렇게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에게 산 교육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나중에 나중에 아이들이 조금 더 컸을 때 엄마를 기억하면 '우리 엄마는 매일 꾸준히 해서 성과를 이루셨지.'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모지스 할머니의 이야기는 작년 겨울 어느 때, 책이 출간되고 나서도 한참 뒤에 들었다. 정확히 어느 매체를 통해서 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75세에 그림을 시작해서 101세까지 그림을 그렸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무엇이든 하고픈 마음이 솟구치게 했다. 그렇게 장바구니에만 담겨있던 책을 밀리의 서재를 통해 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늘 내게 늦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사실 지금이야말로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에요. 진정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이죠."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p.40


나이 마흔이 넘어서 한창 손 많이 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꾸만 무언가를 하는 내가 이해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시류를 읽을 정도는 되는 눈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아이들에게 지혜롭고 현명한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내 배움과 끈기의 끝에 가족이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일보다 하루 더 젊은 오늘 무엇이든 시도해보고 실패도 경험해봐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최근에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나는 끈기가 없어서 성과를 볼 때까지 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 나는 손이 많이 느린 편이다. 그리고 욕심이 많다. 느린 속도를 과한 에너지 투자로 충당하다 보니 무엇을 하건 중간 정도만 하면 급격한 에너지 고갈 현상이 나타난다. 그것은 대부분 중도 포기로 이어진다. 결국 끝까지 할 수 없는 이유를 제대로 모르고 끈기가 없다고만 여겼던 것이다. 

이제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에너지 분배가 필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적절한 속도조절을 했음에도 나중에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는 또 다른 실패 원인을 찾아서 보완하면 된다. 어쨌거나 지금은 예전의 실패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 읽고 쓰고 그리고 배우는 시간이 무엇으로 결실을 맺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75세에 그림을 시작한 모지스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무엇을 하건 늦었다고 핑계 댈 이유는 없다는 걸 느낀다. 지금도 노트북과 다리 사이에 막내를 끼고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아이의 체온을 느끼며 글을 쓰고 있으니 문득 뚜렷한 결실을 맺지 못한다고 한들 이 시간이 의미 없다고 폄하할 수도 없을 거라는 자신도 든다. 무엇이든 시작하길 잘했다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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