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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Oct 02. 2020

몸이 아파도 행복한 명절

정말 아플 줄은 몰랐습니다. 진짜 즐거웠거든요.

어제오늘 몸이 좋지 않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3시간 자고 버틴 일요일 밤, 휴식을 취하지 못한 평범한 월요일, 평일이지만 연휴를 준비해야 해서 정신없었던 화요일, 야간 운전(은 남편이 했지만)으로 친정으로 내려온 후 명절 음식을 하느라 보낸 수요일, 동생네와 술잔을 기울이며 늦은 밤까지 보낸 그날 밤, 그리고 차례를 지내야 하니 부지런을 떨어야 했던 어제. 쉴 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왠지 쉬지를 못했던 시간이 이어져 결국 몸이 고장 났다. 눈이 퍽퍽하다 못해 눈을 감으면 타들어가는 통증이 있었고, 가장 약한 코는 극도의 예민함으로 쉴 새 없이 재채기를 하며 콧물을 뿜어댄다. 


이렇게만 쓰면 너무 고달프고 힘들었던 것만 같지만 실제로는 계속 즐거웠다. 오랜만에 함께 하는 가족들과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와 웃음으로 피곤하다는 생각조차 별로 하지 않았다. 좀 자라는 남편의 권유에도 신이 나서 눈을 뜨고 놀았다. 조금 많이 피곤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솔직히 아플 줄은 몰랐다.


Photo by National Cancer Institute on Unsplash


물론 건강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충분한 수면과 휴식, 건강한 먹거리로 계속해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다른 어떤 가치와도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렇지만... 가끔은 그것보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함께 즐거운 시간은 지금이 아니면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 대가가 20시간쯤 수면해야만 하는 것으로 찾아오더라도 가끔은 정말 가끔은 괜찮고 싶기도 하고 그렇다.


솔직히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눈이 좀 아프다. 20시간 잠자고 조금 나아진 상태로 움직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피로감이 느껴진다. 아마도 글도 길게 쓰지는 못할 듯하다. 눈의 통증 때문에 책도 거의 못 읽지만 그래도 기분은 최고라고 말하면 너무 철이 없어 보이려나?


친정에 올 때면 가지고 있는 책 중에 엄마가 읽기 좋을 책을 몇 권 가져온다. 그중 법륜 스님의 <행복>이 있었는데 책의 한 구절을 덧붙이는 것으로 나의 생각이 옳았다고 우겨본다. (말 안 듣고 아픈 바람에 남편한테 꽤나 혼났다.)


우리가 행복하고 불행한 것은 누구 책임인가요? 모두 자기 책임입니다. 자기 인생은 자기 외에 책임져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시험에 떨어져도, 실연을 당해도, 심지어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도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괴로울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거예요.
우리는 아무리 상황이 어렵고 힘들어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이것을 삶의 원칙으로 중심을 잡고 자기 인생을 남편이나 아내, 혹은 신에게 맡기지 않아야 해요. 자기 인생의 행과 불행은 자기가 결정한다는 것을 꼭 기억하세요. 
<법륜 스님의 행복> p. 277


운이 좋게도 늘 배려해주는 시댁 식구들과 쉴 시간을 마련해주는 친정으로만 오고 가면서 크게 명절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없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간에 막상 몸이 아플 정도로 피곤해지고 나니 몸이 아플 정도로 명절이 힘든 사람도 있었겠구나 하는 데까지 생각이 닿았다. 

명절이라 너무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번 명절에 아무 곳도 갈 수 없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모두가 스님의 말씀처럼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라는 생각을 했으면 싶다. 몸이 피곤해도 가족들을 만나 즐거웠으니 행복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비록 코로나 때문에 가족들을 볼 수 없어 외로운 명절이 되었지만 제법 긴 휴식의 시간을 가졌으니 그것으로도 좋다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무엇이건 생각의 방향을 바꾸는 건 종이 한 장 차이인 듯하다. 어떤 순간에서도 행복을 찾기를 소망하고, 그를 위해 노력하면 눈이 빠질 듯하고 콧물이 줄줄 흐르지만 허허허 웃을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많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짐작도 하지 못할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도 가벼운 나의 이야기가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그래도 나는 행복하네.' 할 수 있는 명절이 되었기를.... 부디 모두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한가위가 되길... 달 밝은 밤 보름달에 기대어 소원을 빌어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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