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점검의 시간
벌써 4개월이나 지난 일이다. 나는 한창 매일 글쓰기에 도전하고 있었다. 한 편 한 편 공들여 써야 한다는 압박감과 더불어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욕심이 가득했던 시기였다. 글을 쓰다 보니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고 정갈하지 않은 문장들이 눈에 거슬렸다. 누가 봐도 유려한 문장을 가진, 멋진 글을 쓰고 싶었다. 글쓰기 관련 책을 마구 사들였다. 마치 책을 사는 것만으로 명필가가 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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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어 권의 책을 읽다가 덮어버렸다. 한 번에 소화할 수 없는 분량이었다. 책대로 글을 쓰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깜냥이 안 되는 욕심을 부렸음을 알아챘다. 그렇게 글쓰기 책들을 책장 어딘가에 박아버렸다. 저 책에 나오는 말을 신경 쓰면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주 하면 늘어납니다. 글쓰기도 훈련입니다.
<임정섭의 글쓰기 훈련소> p.70
말이 안 돼도 글을 썼다. 두서없는 내용에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을 외면하고 발행을 눌렀다. '이건 초고야.' 스스로를 속여가며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날까지 뒤도 보지 말고 무조건 쓰자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서평을 쓰면서 또 하나의 글쓰기 모임을 신청했다.(남편이 그 사실을 알고 기겁했다.) 최근 발행된 글을 보면 정체되다 못해 퇴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변화의 목표를 너무 높게 잡지 않더라도 정비를 해야 할 시기란 게 느껴졌다.
내가 쓰는 글은 주제가 모호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다. 간혹 글을 쓰면서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가 헷갈릴 때도 있다. 알면서도 문제점에 신경 쓰면 글쓰기를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핑계를 대며 외면했다.
평소 말을 할 때도 길게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 글에서도 군더더기가 많다. 퇴고의 횟수를 늘리면 훨씬 좋아지지만 한정된 시간에 글을 쓰고 있기에 그조차 쉽지가 않다. 간단하고 명료하게 전달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틀려도 모르고 지나치는 맞춤법과 문장을 해치는 표현을 줄이고 싶었다. 습관적으로 일본식, 영어식 표현을 쓰고 있었지만 수정 방법을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찾아보고 고칠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종합적인 변화를 위한 환경 설정이 필요했다. 그렇게 새로운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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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쓴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장점과 단점에 대해 알려주니 기분 좋았다. 약속된 피드백이었다고 해도 정성스럽게 한 문장씩 읽었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쓴 나보다 더 꼼꼼히 보지 않았을까?
분명 고쳐야 할 점을 빽빽이 받았지만 오히려 시원했다. 평소에 부족하다고 느낀 부분을 지적받아 그랬는지도 모른다. '거봐, 잘못하고 있는 게 이렇게 많았잖아!' 감사하고 상쾌하고 유쾌하고 신나는 감정이 들어 저녁을 하다 말고 짧게 답장도 썼다. '감사합니다.'
오늘 다시 피드백을 읽어보니 빽빽이 부족한 점들을 받는데도 기분이 좋았던 이유가 따로 있었다.
'완전 쓰레기는 아니었나 보다.'
그건 안도감이었다. 매일같이 쓰고 있지만 부족한 것 투성이인 글들을 발행하면서 표현하기 힘든 죄책감이 있었다. '맞춤법도 완벽하게 보지 않으면서 글을 쓴다고 하다니!' '됐고.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이렇게 밖에 표현을 못하냐?' '이 생뚱맞은 전개는 무엇?' '무슨 글이 이렇게 축축 늘어지는지....' '양심도 없는 작가네.'
내 속에 수많은 내가 비난하고 질타했다. 너는 글을 쓸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꾸역꾸역 쓰고 있는 것이 글을 읽어주는 이들에게 해가 되는 일이라고 말이다.
피드백을 보니 나를 향한 질타가 근거 없는 것들은 아니었음을 알았다. 그래도 안도감이 들었던 이유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 된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어 구석에 박아두었던 글쓰기 책들을 다시 꺼내 들었다. 지난번처럼 한 번에 완전 정복을 꿈꾸지는 않는다. 시간이 될 때마다 며칠에 한 번씩 읽어보고 적용할 예정이다. 읽은 것을 바로 적용하지 못하고 잊어버려도 괜찮다고 위로도 해줄 테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무수히 많은 날들이 남아 있을 테니 부족해도 괜찮다. 내가 버린 쓰레기는 내가 잘 주워서 예쁘게 재활용해보겠습니다!